대안사회의 희망, 생태공동체

2007.07.24 14:02:01

김성균

생태위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생태위기란 “환경과 오염, 혹은 파괴가 전 지구적 위험 수준에 이르러 일반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족 그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의미하며 광의적으로는 인류의 동식물과 여타 자연을 포함한 비인류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생태위기는 곧 인류의 위기라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생태위기의 상황은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1972)’를 시작으로 폴에를리히의 ‘인구폭탄(1968)’,’인구폭발(1990)’,월드리서치 연구소 레스터 브라운이 1984년 이후 발간하는 ‘지구환경보고서’,’성장의 한계’ 이후에 다시 19년 만에 발간된 ‘한계를 넘어서’등의 저작들에서 인류에게 꾸준하게 경고되어 왔다. 그리고 UN산하 브룬트란트 위원회의 ‘우리 공동의 미래(1988)’라는 보고서 등도 생태위기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환경오염의 문제가 국지적인 문제에서 지국적인 문제로, 그리고 나의 삶 뿐만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생태위기의 문제 해결방식은 종합과학적이고 공익적이며 기하급수적으로 환경오염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방식이 아직도 분업화 및 전문화에 근거한 접근양식, 사익에 충실한 접근, 산술급수적 환경개선에 근거한 접근 방식 등 여전히 표피적인 접근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류가 지난 몇 백년 동안 지켜온 문명에 대한 신화 같은 믿음과 더불어 이를 이루어 내기위해 동반되는 발전에 대한 이해와 관계되어 있다. 보편적으로 발전에 대한 논의는 경제적 측면만 고려된 사항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의제보다는 국가개발 중심의제로, 분권화, 분산화 보다는 집중화로, 다양화보다는 획일화의 성향을 보이면서 몇 가지 문제를 동반하게 된다. 가령, 기업내 거래에 있어서 계열내 거래를 취함으로써 지역과 지역, 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산업연관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지역에 진출한 기업은 실행기능만 담당하고 구상기능은 대도시 본사에서 수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이끌어 내는 매개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지역경제를 운영함에 있어서 대부분 외부로부터 자본을 유입하는 수단으로 대기업이나 외자를 유치함으로써 지역내에서의 자본의 순환을 어렵게 만들고 지역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다는 점, 그리고 미시적 측면의 지역의 산업 기반을 지원하는 제도적, 행적적 지원, 의사결정의 민주성 등이 전혀 보장 되지 않는 점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공동체의 의미를 펌하시키는 주요요인이 되는 동시에 초국적 기업, 다국적 기업이 출현을 삶의 문명의 척도로 삼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메커니즘은 일상의 문제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생태위기의 상황을 극도로 구체화 시키는 전략을 삼고 있다. 그 전략이 경제중심적 사고에 기인한 세계화 전략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나타나는 생태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시장기구가 지니고 있는 특수한 상황인 능률성에 치중한 나머지 기하급수적으로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환경개선의 노력, 즉 환경관리는 정부의 특수한 상황인 비능률성 때문에 산술급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새로운 영성 그리고 생태공동체

생태위기는 ‘자원은 무한하다’는 우리의 절대적 믿음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러한 성찰은 단수 자연을 대하는 입장의 변화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대응방식과는 다른, 보다 근본적이고 새로운 무제해결 방법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운동방식은 자기성찰, 자기각성을 전제로 한 일상생활의 개혁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들 즉, 단일 사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환경운동, 제도와 법의 개선을 통해 이루어지는 환경관리주위, 정치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녹색정치, 소비지향적 사회체제를 묵인한 체 진행되는 환경교육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지금까지의 표피적인 이해와 대응에서 벗어나 깊은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인류는 토지공동체의 일원에 불과하다는 것, 지역사회 공동체에 적합한 자연 자원의 운영과 적용 등이 궁극적으로 생태공동체가 지향하여야 할 관점이라는 것, 그리고 ‘일반사회 = 자본주의 = 소비사회’ 체제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녹색가치의 실현을 생황 속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현은 독신이 애인이 생기면 그 대생을 ‘자기’라고 불러 애인과의 관계 속에서 대자아를 형성하는 것처럼 자연과의 과계도 이와 같은 대자아를 형성하는 관계로 변화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의지가 생활 속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야 한다.

 생태공동체가 이야기 하는 것들

비데를 판매하는 회사의 재미있는 광고 카피가 문뜩 생각난다. “화장지를 언제까지 사용하시렵니까? 만약, 중국과 이도가 화장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몇 년 후에는 지구의 산소를 공급해주는 아마존이 소멸되어 버릴 것 입니다.”, 사실, 이 광고 카피는 수세식 화장실이 지니고 있는 편리성에 기인한 우리의 삶의 양식에 대한 업급은 근본적으로 회피한 채 자신의 상품을 판촉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생태위기 상황을 전달함으로써 비데의 사용에 환경보호를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에 염두 해두고 만들어 진 것 같다.

그러나 이 광고는 소비지향적 사회체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통하여 여전히 소비주의를 지향하는 이 사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자연을 통제하고 자연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과 생태학적 원칙은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경제학적 가치만이 우리의 삶의 중심적인 가치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봄에 들려야 하는 새소리, 여름 밤에 보이던 반딧불이, 가을 저녁에 듣던 귀뚜라미 소리, 겨울밤에 울던 소쩍새 소리…..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리와 흔적 그리고 자연이 지니고 있는 여백의 미에 대한 느낌은 성찰을 이루어 내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이러한 행동이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경제학적 가치와 행동은 미래세대를 담보로 진행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태공동체의 다양한 실험은 세계화에 대응한 지역적?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대안 만들기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미래세대와 함게 할 우리의 삶터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터는 단순히 물리적인 부분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이해가 근본을 이루어내는 일이며, 지난 인류의 문명사적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표피적인 사회시스템을 극복하는길인 동시에 생태고동체 구상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다. 그 도전은 다음과 같다.

▷ 대의민주주의체계가 가지고 있는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하계를 극복하여 보여주고 있는 합의제
의사결정방식
▷ 지역의 자원과 환경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여 적용하는 기술의 적용
▷ 생명과 살아 움직임을 원칙에 두고 진행하고 있는 자연농법의 현장들
▷ 지역의 정체성 복원과 구성원들 간에 마음의 교류를 위한 지역문화 축제
▷ 획일적 교육전달체계에서 전인적 교육체계를 도모하고 있는 교육현장들
▷ 지역 내의 순환, 거래의 대면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공동체 경제의 운영
▷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자각하고 참여하는 마을 만들기
▷ 일상생활 속에서 도시와 농촌의 공생,공존의 삶의 터를 이루는 생활공동체 현장들
▷ 나 혼자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존재하고 있다는 열린 마음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내용들은 발전에 대한 새로운 고민, 그리고 그 발전적 의미가 지녀야 할 지역공동체의 과제, 그리고 그 과제를 바탕으로 이루어내는 생태공동체의 조건들의 실험이 되는 것이다.

 생태 공동체는 토지 공동체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된다.

생태 공동체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대안사회의 희망이어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토지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설정 그리고 그 관계를 기초로 한 공동체의 형성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좁게는 나 자신의 서 있는 곳에서부터 토지와 이루여야 할 공동체부터 넓게는 지구를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인식하여 이에 대하여 지켜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한 인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인류가 지탱하여야 할 삶의 원칙과 희망을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 즉 생태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이 생태공동체의 도전과 시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기 다음의 몇 가지 의제가 수반된다.

▷ 토지는 더이상의 경제학적 대상이 아니다. 토지는 인류를 비롯하여 모든 생물들이 서로 기대어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 인류는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다시 명심하고, 그에 맞는 생활세계를 구현해야 한다.
▷ 이러한 인식이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생태위기 시대에 대응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것이며
삶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기 위한 시점에 불과하다.
▷ 새로운 삶의 방식은 ‘생태공동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 윤리 혹은 철학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다시 한번 지금이 ‘생태위기시대’라는 것을 대
전제로 사회,정치,경제,문화 등의 영역에 운영될 때만 가능하다. 그러면 ‘정의로운 것’이며 그렇
지 않으면 ‘부정의 한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소식지 2004년 9,10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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