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텃밭의 소박한 즐거움 | 이광성

서울지부 팀원들이 각 부분별로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담당을 맡으면 각자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그냥 보조만 하겠다고 했지만, 적은 인원이라 보조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옥상 텃밭을 하게 되었다. 지난 두 해 동안 옥상 방수문제로 제대로 채소를 키우지 못했다. 올해도 방수가 안되면 잎채소만 조금 심으면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수가 제대로 끝난 것이 아닌가? 나름대로 하려니 막막했지만 서둘러 계획부터 세웠다.

첫째, 가을에 쓰레기 처리문제가 많은 나무종류는 될 수 있는 한 심지 않는다.

둘째, 최소 비용으로 한다. 겨울나기 힘든 꽃들에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음과 같은 텃밭을 구상해 보았다.

<텃밭 배치도>eco1303p22

인터넷에서 파종시기를 알아보았다.
2월중순~하순 : 감자, 고구마, 오이, 수세미 씨뿌리기
3월말~6월까지 수시 파종하는 것 : 열무, 상추, 케일, 아욱, 쑥갓
3월말~ : 당근
4월초 : 작두콩, 시금치,
4월중순 : 토란, 땅콩, 강낭콩, 완두콩
5월초 : 고추, 가지, 토마토, 파프리카 모종사서 심기
5월중순~하순 : 일반콩, 들깨, 고구마, 수박, 딸기 모종
6월초순 : 팥, 흰콩
6월중순 : 서리태
7월하순~8월초순 : 배추, 가을무, 갓
기존에 사용하던 텃밭 상자들이 거의 깨지고 부서져서 새로 구입해야 했는데, 마침 서초구청에서 도시텃밭 화분을 분양해서 저렴하게 구입했다. 4월 11일 받게 되니 일찍 씨앗을 뿌려야 되는 작물은 모종으로 심어야 될 것 같다.

옥상정리도 문제였다. 워낙 안 쓰는 물건들이 옥상에 많고, 부서진 물건과 쓰레기들을 다 치우기엔 팀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마침 봉사자들이 많이 온다고 해서 일이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2월 20일 감자를 심어야 할 시기라서 농사를 지어보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자 눈 한 개씩 떼지 말고 한 개를 반으로 잘라 심으라고 하셨다. 물이 잘 빠지는 상자면 두둑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재도 묻히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감자 3개를 잘라 6군데 심었다. 고구마는 그릇에 물을 담아 싹을 낼 준비를 했다.

3월 8일 영주에 사시는 이정자님 댁을 방문했다가 각종 씨앗을 얻어왔다.
4월 2일 작두콩 씨 3개를 심었다. 채송화, 봉숭아, 패랭이 꽃씨를 뿌렸다.
4월 11일 서초 구청에서 흙, 모종(고추, 토마토, 상추), 모종상자를 20개 구입했다.

4월 17일 토마토 모종을 6개 상자에 흙을 채워 미리 심었다.
4월 24일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토란을 심었다. 땅콩도 심었다. 고구마도 싹이 보여 상자에 심었다.
5월 3일 고추 모종을 심었다.

5월 8일 텃밭을 맡고부터는 길을 걸으면서도 길가에 예쁘게 핀 잡초 같은 꽃들까지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감자 싹이 제법 올라왔다. 흰콩과 해바라기 씨를 심었다. 심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거름(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 시킨 것)속에서 올라온 호박, 오이, 수세미의 싹을 뽑아 옮겨 심었다. 잘 자란 깻잎, 겨자, 상추도 옮겨 심었다.

5월 14일 감자는 잎이 무성하게 자랐다. 땅콩 싹이 8포기 심은 것 중 6포기가 예쁘게 올라 왔지만, 안타깝게도 토란은 썩어 버렸다.

5월 15일 이정숙님이 상추, 들깨, 가지 모종을 주셔서 심었다. 너무 어려 뭉텅 뭉텅 심었다. 고추, 토마토 열매가 제법 많이 달렸다. 봉숭아 한 포기도 쑥 자라고 있었다.

5월 22일 거름 속에서 뽑아 심은 겨자, 상추가 많이 자랐다.

5월 23일 봉사자 한분이 수박, 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 당근, 갓, 땅콩, 옥수수 모종을 가 져다 주셨다.

5월 24일 마침 있었으면 하는 수박, 당근 모종이 생겨서 기뻤다. 땅콩은 몇 개 더 심었다. 옥수수는 대 처리문제 때문에 싫었지만 몇 그루 심었다.

5월 29일 적상추, 열무, 비트 씨를 뿌렸다. 겨자 잎이 쑥 자라 꽃을 피웠다. 그 위에 흰나비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6월 3일 잡초를 뽑아 주고 지주대를 세웠다. 지주대가 약해 6월의 큰비와 바람에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6월 5일 열무가 제법 많이 자랐다. 적상추는 아직 어리고 비트는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봉사자가 작두콩, 호박, 오이줄기가 올라올 것을 대비하여 줄을 매어놓았다. 봉숭아는 화분에 옮겨 심었다.

6월 12일 상추, 열무는 모두 뽑고 들깨 모종을 그 자리에 심었다. 봉숭아가 꽃을 예쁘게 피웠다. 채송화를 여러 포기 옮겨 심었다.

텃밭이 계획했던 대로 조성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풍성한 텃밭 을 가꿀 수 있어 흐믓했다. 같이 봉사하는 팀원이 따주는 토마토 맛이 이렇게 좋을 수가…

가지, 고추, 토마토가 익어가고 상추 장다리가 올라와 꽃을 피우고 거름속에서 굼벵이가 보이더니 벌써 나비가 되어 주위를 날아다닌다. 벌들이 수박, 오이, 가지, 고추, 호박, 토마토 꽃들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수정을 해 주더니 열매를 키우고 있다. 이 모든 생명이 커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알지 못했던 즐거움이 마음을 채워준다. 처음 시작할 때 하기 싫어했던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에코붓다 소식지 2013년 3월~6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bottom_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