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베란다 텃밭~ | 양윤덕

나에게는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병이 하나있다. 그건 바로 텃밭농사의 향수병이다. 아이 어릴 때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의 한 전원마을에서 2년 정도 산적이 있었다.

그때 앞마당에 일궜던 텃밭에 대한 추억이 봄만 되면 어김없이 피어올라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텃밭농사를 짓기가 쉽지 않고,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늘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올 초에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이 나면서 우리 가족은 해운대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급하게 집을 구했는데 용케 볕이 잘 드는 남향집을 얻게 되어 베란다에 텃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게다가 해운대구에서 4월부터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본격적으로 실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렁이를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하면서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도시에서 과연 생태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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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부산에서 도시농업박람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도시농업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베란다 텃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면서 호기심과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내친김에 분변토와씨앗을 얻어다가 베란다에 무작정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박람회에서 사온 그루팩과 함께 집에서 뒹구는 빈 화분들과 스티로폼 박스, 프라스틱 상자 등을 모아서 흙과 분변토를 섞어 화분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분에 적상추, 청상추, 비타민채, 치커리, 완두콩 씨앗을 심었다. 몇일 물을 주며 기다리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싹이 예쁘게 돋았다. 어찌나 신기하고 대견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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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 돋던 새싹들이 6월을 지나면서 제법 크게 자라서 식사 때마다 조금씩 뜯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완두콩과 방울토마토는 분변토에 많이 넣어 심어서 그런지 금새 자라 열매를 맺었다.

밭에서 키우던 것과 비교하면 작고, 연하고, 양도 적었지만 수확의 기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사 때마다 싱싱한 채소를 손쉽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게다가 지렁이를 키우고 있으니 음식물 쓰레기가 고스란히 양질의 분변토가 되어 채소를 키우는데 쓰이고 있어 기쁨과 보람을 더해 주었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있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잘 돌보지 못했더니 방울토마토와 완두콩이 말라서 어느새 시들시들해져 버렸다. 게다가 비타민채도 진딧물이 번져서 결국에는 다 먹지도 못하고 모두 뽑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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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싹을 틔운 로메인을 심어 지금은 한참 잘 크고 있는 중이다.
베란다 텃밭 가꾸기도 이제 시작이니 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노하우가 생기지 않을까..,
욕심 부리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 보려고 한다.
도시 그리고 아파트라는 삭막한 곳에서 주어진 작은 공간 베란다~

우리집에서는 그곳이 햇볕과 바람, 화초와 채소가 어우러진 풍성하고 생기 넘치는 공간이다.
베란다에서 갓 따온 채소를 곁들인 소박한 아침상을 보면서 새삼 이 공간이 소중해진다.

양윤덕 | 해운대

에코붓다 소식지 2013년 7월,8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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