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잔한 그녀에게 – 혼자 그런다고 CO2가 줄어? | 신정화

‘CO2 줄이는 것도 좋지만……. 다른 반 다 에어컨 켜고 공부하는데 우리 반만 CO2 줄인다고 되느냐.’ 올해부터 시작된 학부모 평가에 실린 그녀 반 어느 부모님의 평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세상에 쓰레기는 없다. 쓸모를 못 찾은 것뿐이다.’ 라는 환경 실천의 세계적인 대가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윤호섭교수님의 말씀을 급훈처럼 붙여 놓고 사는 그녀. 온갖 폐품으로 교실이 아니라 쓰레기 동산을 만들어 놓고 살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느 눈 밝은 부모님께 딱 걸렸다.

편함에 젖어 사는 요즘아이들이 특히 귀찮아하는 것이 바로 저탄소 실천교육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하디 귀한 아이들을 공주처럼 왕자처럼 받들어 모셔도 모자라는 세상 아닌가. 이런 세태에 빈그릇운동이니, 저탄소니, 기후행동이니, 탄소배출권이니 뭐니 실천을 해야한다며 그 반 아이들에게 빈그릇운동의 고통에 한 술 더 떠 쓰레기를 끌어안고 살자했으니 거울 같은 평가가 나올 수밖에. 참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다.

아시다시피 그녀의 빈그릇운동은 유별나다. 사람들이 애완견은 끼고 앉아 머리핀에 껌에 결혼에 장례식까지 치러 주면서 우리를 살리는 물고기에게는 껌은커녕 오물에 독극물까지 먹였으니 참 비정했다며 나 하나라도 식판에 남은 동물성 기름기까지 물로 깨끗이 비운 식판에 물고기를 넣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나서는 그녀의 빈그릇운동. 스님들 발우공양보다 잘한다고 소문은 나있지만 빈그릇운동이 뭐 길래 물고기 살리려다 남의 집 귀한 자식 다 시들게 생겼다.

홍제천에 도롱뇽이 살아오든 말든 한강에 물고기가 죽든 말든 먹기 싫은 음식은 그냥 남겨 후딱 버리면 얼마나 편하고 좋아. 3월 초가 되면 빈그릇운동 때문에 아이가 학교 가기 싫어한다는 항의 전화가 온다는데, 올 해는 학교도 아닌 교과부에 항의 전화를 올렸다는 부모님도 계시다는데 글쎄 웬 고집을 그렇게 부려. 그만 둬버리지 젠장.

빈그릇운동 같은 것 지도 안하면 제일 편하고 좋은 건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애들 닥달 안하니 인기 올라가, 점심 빨리 편하게 먹고 하늘 한 번 쳐다 볼 수 있어……. 이럭저럭 아이들보다 편하고 좋은 건 바로 자신인 걸. 왜 사서 고생이야.

안쓰런 마음에 이제 고생 그만 하라고 하니 빙그레 웃기만 한다.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는데도 점점 더 자연을 멀리하고 편리함만 좇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잔다.

쓴 맛을 보기 전에 단 맛을 보면 안 된다는데, 단맛만 알고 자라는 어린 아이들에게 고통 속의 단 맛을 찾아내는 고진감래 교육은 쓰레기통에도 안 보인단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중에 최고가 된 것도 고통을 모르고 컸기 때문에 조그만 벽에 부딪쳐도 쓰러진다는 지론이다. 고통을 모르게 키우는 것이 사랑인 줄 아는 시대의 흐름에 역류한다는 것이 힘에 부치지만 고통 속의 단맛을 알고 나서 비 온 뒤의 땅처럼 여물어지던 민정이 호경이 진현이 선정이 하은이 채은이 가은이 등 기라성 같은 환경천사 제자들을 보면 중단 없는 전진이란다.

에어컨을 켜기 위해 창문을 닫을 때 살랑살랑 불어 들어오는 한 줄기 자연 바람의 소중함을 느낄 기회마저 닫아버리지 않는지. 인간의 삶은 자연이 목표가 되어야하고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중심에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이 그림 중의 그림이 아니냔다. 에어컨을 켜기 전에 ‘여름엔 더워야 곡식이 익는 법이라고 자연 편을 들어 주는 마음’을 한 번만 더 다독거려주면 어떠냔다.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예습인데 나라에서 준비물까지 획일적으로 챙겨 입에 떠 넣어 줘도 되는 지 묻는다. 화려한 색상의 색종이로 깨끗한 도화지에 척척 그리고 붙이고 쓰다 남은 건 공짜니까 커다란 쓰레기 종량제 봉지에 시원시원하게 펑펑 버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못 본 척 넘어가면 없는 인기나마 유지하고 자기편하고 좋으련만 쓰레기 봉지에 대고 잔소리를 해대니 세상에 인기 없는 그녀다.

이러니 담임배정이 이루어지는 2월이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빈그릇 마녀 신정화 샘 반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지 않는가.

하루에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차를 마실 때마다 새 종이컵에 마시면 얼마나 깔끔해. 종이컵 하나가 CO2 11g을 만든다고 궁시렁거리며 쓴 컵에 이름 써 놓고 또 쓰고 또 쓰는 주접을 뉘라서 좋아할까.

요즘은 한 술 더 뜬다. 교실에서 나오는 쓰레기 봉투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게 깨끗한 휴지더라며 깨끗하게 쓴 휴지는 교실 한 켠에 모아두었다가 우유를 쏟거나 수채화 그릴 때 한 번 더 쓰고 버린단다. 그러니 백화점이나 식당 등에서 주는 질긴 물휴지는 물론이거니와 입을 살짝 닦은 휴지를 핸드백에 슬그머니 집어넣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한지 ‘아무래도 내가 저탄소 암(?)에 걸렸나보다.’고 너스레까지 떨면서. 그러니 1학기 내내 그녀 반의 쓰레기 종량제 봉투는 5L를 다 못 채웠다니 고통 속에서 캔 단맛이 아닐까.

취옹이 산사에 가는 건 술을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보기 위해서 라고 했다. 그녀가 저탄소암에 걸린 듯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건 환경살리기보다 먼저 배려에 있다고 한다. ‘배려란 나와 상대방 그리고 환경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잘 관리하여 보살펴 주는 것’이라며. 자기는 가진 게 없어 이웃을 위해 베풀 게 없으니 CO2라도 줄이는 게 이웃에게 할 작은 보답이란다.

한 방울의 맑은 물, 한 줄기 삽상한 바람, 한 줌의 깨끗한 흙을 후손과 함께 하고자하는 사랑과 배려. 오늘 그녀가 빈그릇 마녀의 전당에 오르기까지 끌어 주시고 밀어 주신 모든 아름다운 분들에 대한 작은 보은이란다.

그 학부모님도 1년 지나고 나면 여느 부모님들처럼 ‘처음엔 힘들었으나 이제는 우리 가족끼리 빈그릇 대회를 해요.’라는 편지를 보내실 거라며 띄우는 한 줄기 배려의 미소. 깨끗한 지구를 위한 배려의 완성! 빈그릇 친구!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1-2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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