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으로 일궈나가는 건축가와 사람들, 그리고 1+1 | 정상오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협동조합으로 일궈나가는 건축가와 사람들, 그리고 1+1
정상오 | 경기도 안성

김성균(이하‘김’, 성결대학교 교수) ;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정상오(이하‘정’) : 96년도에 ‘청년 불자등반대’ 라고, 군대에서 선임을 따라 덕유산에 갔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환한 게 인상적이었다. 제대 후 보수법사님께 인간붓다 강의를 듣고 감동하고, 정토회에 다니게 되었다. 직장인 강남 사무실에서 일이 끝나면 홍제동으로 갔는데 분위기가 가족적이고 재미있었다. 98년에 북한 돕기 활동에 자연스럽게 동참했는데 정토회의 좋은 점은 ‘뭐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시니까 이해를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던 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결혼 전에 그래서 더욱 감사한 일이다.

김 : 결혼은 언제?
정 : 2001년도에 정토법당에서 했다. 그러고 보니 정토회 마니아다.(웃음) 은혜를 많이 받아서 은혜를 많이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표현하자면 나는 하루살이 같은 존잰데 정토회라는 천리마를 만나서 내가 천리마 등에 타서 하루에 천리를 달리고 있는 것 같다.

김 : 정토회 이전과 이후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 : 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 내가 가진 이 건축 기술이나 배운 것들을 세상에 어떻게 회향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소박하게 환경 실천하고, 북한 도와주고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잘 쓰일까를 구체적으로 고민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협동조합을 꾸려서 집이나 건물을 짓는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마치 여행가이드처럼.

김 : 공식적인 조합이름은 무엇인가?
정 : ‘코비즈’라는 건축 시행 협동사이다. ‘cowork-bees’, 함께 일하는 벌들, 즉 함께 건물을 짓는 벌이나 개미 같은 집단들을 비유한 말이다.

김 : 조합원들만 같이 활동을 하는 것인가?
정 : 우리는 사업자로 활동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인테리어, 전기회사, 목수, 건축 시공 설계사 등의 조합이지 소비자 조합이 아니다. 지금은 정보 공유 시대지만 건축은 너무나 전문적이라서 아무리 영리한 소비자라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걸 풀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이런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우리 조합에서는 예를 들면 의뢰인들과의 첫 만남에서 기능적인 부분 외에 그 분들이 집을 왜 지으려고 하는지 밑마음을 물어본다.

그러면 예기치 않던 질문에 처음에는 당황하시지만 ‘집이 백 평이 돼도 정말 지으려고 하던 게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또 지으려 하고 후회한다. 단 열 평을 짓더라도 그 안에 원래 하고자 하던 것들이 반영되면 만족한다. 그게 뭔지 좀 찾아보자.’ 그러면 얼굴이 사악 풀리고, 마치 힐링한 것 같은 표정이 된다.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은 텃밭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개울도 있었다. 우리 아이도 그렇게 살게 해주고 싶다.’, ‘남편은 일이 바빠 아이들과 대화가 안 된다.’ 이분들의 핵심은 아파트 문화의 탈피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집을 짓는 이유가 아이와의 대화인데도 여전히 아파트처럼 지으려고 하는 거다. 그럼 후회할 것이기 때문에 짓고자 하는 이유를 자꾸 묻게 되는 것 같다. 내 느낌이 왜 이런 건지를 일속에서도 계속 찾아내는 거다.

김 : 들꽃 피는 마을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정 : 어떤 거사님이 7~8년 전에 마을을 만들어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 명이 2008년 12월25일 첫모임을 해서 그때부터 2년 동안 매달 만나서 집 짓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땅을 공동 구매하게 되었다. 정토회 불사했던 소장님과 함께 일했다. 지금 10가구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산다.

김 : 마을의 생활 방식은?
정 : 주말에 한 번 밥상모임, 한 달에 한 번 달모임이 있다. 거의 매일 서너 명씩 티타임을 갖는다.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11시까지는 마을 운력이 있다. 마을에 역사 선생님이 초등학생들을 가르쳐 주고,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중창단이 같이 노래 부른다.

김 : 2000평 디자인 할 때 생태마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었나?
정 : ‘생태’라는 것이 ‘살아서 활동하는’, ‘활기찬’ 그런 거 아닌가? 천연재료를 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에너지를 어떤 것을 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고’라는 말씀처럼 낭비하지 않고 쓰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태양광, 전기, 가스, 보일러, 나무, 석유, 지열 등을 다 쓴다고 하면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이다. 태양광의 경우 초기투자비용이 되게 많이 든다. 아파트에 살기 위해 국민의 반 이상이 돈을 빌리고 모은 돈을 집에 투자하지만 만족할 수 없는 주거환경을 만들어놓았다.

우리 조합에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건축물을 짓고 몸이 체감할 수 있는 온도구조와 환기구조로 만든다. 겨울은 겨울을 느낄 수 있고, 여름은 여름을 느낄 수 있도록. 건축을 할 때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데 힘쓰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건축물에 2중 지붕을 만들어 에너지 효율을 더 높이고 있다. 우리가 실험하고 싶었던 것은 마을에 세탁기 한 4개만 모아서 공동장소에 놓고, 냉장고도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지금의 문화는 뭔가 잘 못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김 : 집짓기 1+1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정 : 몇 년 전에 정토지에서 ‘어느 날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에 매일 같이 다니던 언니는 안 오고 동생만 와서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더니 어젯밤에 집에 독사가 들어와서 물려 죽었다’는 기사를 읽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인도에서는 집 짓는데 250만 원이면 된다고 하니 한국에서 한 채 지을 때마다 인도에서도 한 채 짓겠다고 원을 세웠다. 작년에 2000만 원 보냈다. 우리 코비즈 계약서에 이런 항목이 써있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 계약할 때 의뢰인에게 ‘선생님은 안 하셔도 우리는 한다.’ 라고 말씀드린다. 기본적으로 우리 조합에 들어오려면 수익의 1%를 제3세계에 보내는 것을 가입할 때 쓰고 들어와야 한다. 만 채 기부하는 것이 목표니까 백만 채는 지어야 한다.(웃음)

김 :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가?
정 : 코비즈 협동조합의 지사를 지역 곳곳에 만들고 싶다. 만 채를 기부할 수 있도록 조합원을 확대하고, 우리 조합의 건축문화를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해 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김 : 여기에 이르기까지 장애요소도 있었을 것 같다.
정 : 물론 있었다. 조합을 만들기 몇 년 전까지는 일반 회사의 건축사업 파트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때 고민도 많았고 의뢰인들에게 비난도 많이 받았다. 전에는 잘 모르면서 이상을 추구하다가 의뢰인들에게 불편을 드린 경우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집을 짓는데 사람만 자기 집을 남에게 맡기는 문제에 대해 나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집을 지을 때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외에는 자신들의 다양한 삶의 패턴에 따라 스스로 전체 계획을 짜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거나 할 수 없다.

전 국민이 부동산 전문가가 되고 땅과 집과 건축물이 투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사회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일을 꾸릴 때는 현실과 이상 속에서 좌충우돌이 많이 있다. 지금도 배우고 경험하고 우리문화에 하나씩 맞추어 건축협동조합을 다듬어 가고 있다. 조합의 문화가 생소한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갈등도 생기도 시간도 더 걸릴 때가 있다. 그래도 가치관을 공유하는 정토회 멤버들과 함께 일하니 재미있다.

김 : 사회적 장애에 부딪쳤을 때 방향을 틀기 쉬운데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정 : 육아를 끝내고 협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양평에 집을 짓고 싶은 퇴임한 부부와 홍지동에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 하고 싶은 모 대학 교수님과 연결이 되었다. 그때 이왕에 새롭게 시작할 거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협동조합으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그동안 함께 호흡해온 팀과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때가 맞은 거 같다.

전에 내가 비난 받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을 때 법륜스님이 강연에서 선남녀 선여인이 악행을 저질렀을 때 그 악행을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남에게 불편함을 줬기 때문에 엄청 경시당하고 천대당하고 멸시당하는 고통을 겪음으로써 그 과보를 풀었다는 말씀을 듣고 내가 비난 받는 이유를 확연히 깨달았다. 지금은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기다린다. 계약서도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코비즈건축시행협동조합’과 ‘의뢰인’의 이름을 쓴다.

김 : 마을에 개인적인 친인척이나 탐방인은 많나?
정 : 마을 사람들이 너무 편안해서 고민거리가 없으니 정토회에 나가기보다는 마을 안에서 더 즐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싫어하더라. 우리 코비즈에게는 사업이라 공개가 되어야 좋은데 외부에 노출 되는 것을 싫어하니 조금 섭섭했다. 그러다 딱 떠오른 게 다 때가 있는 것인데 아직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지금처럼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 일이구나 싶다.

김 : 나는 개인적으로 전공이 ‘도시 및 지역 개발’인데 공동체 삶에 대해 몰랐다.
정 : 전에는 내가 생태마을을 구호로 하고 다녔다. 여기서는 삶 자체가 생태적일 수밖에 없다. 음식물 쓰레기는 닭을 주고, 농작물의 성장에 좋으니 자연스럽게 빗물을 받아쓴다. 바깥마당 거실 유리 앞 롤스크린은 에어컨 없이 사는 생활의 지혜다.

김 : 이제까지의 보살님들과는 또 다른 전문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많이 배웠다. 우리의 건축 문화나 생태적 집짓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말 획기적인 방법으로 건축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에코보살을 찾아다니며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진짜 잘사는 분들을 찾아보자 했는데 정말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이 많이 된다. 고맙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3년 9-10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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