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밥 그릇 하나에서 온 세상을 만나는 수행

[이웃종교의 향기 – 12] 현희련 사단법인 에코붓다 사무국장
한수진 기자 | [email protected]

승인 2013.08.19 12:15:32

“이것 보세요. 지렁이들이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영양가 있는 흙을 만들었어요. 사무실에서 나오는 찻잎과 과일 껍질 처리는 지렁이 항아리 하나로도 충분해요.”

현희련 사단법인 에코붓다 사무국장이 책장 앞에 놓인 항아리 뚜껑을 열어 흙을 들추자 붉은 지렁이가 꿈틀거렸다. 검고 촉촉한 흙은 지렁이가 음식물을 먹고 만들어낸 ‘분변토’다. 에코붓다뿐만 아니라 정토회 산하 단체와 법당 등 관련 공간은 지렁이 화분과 퇴비함을 활용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에코붓다가 쓰레기제로운동을 시작한 1999년부터 정토회 건물에서는 음식물쓰레기가 단 1그램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에 수백 명이 드나드는 건물에서 십여 년간 누구 하나 흔들리지 않고 약속을 지킬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현 사무국장과의 인터뷰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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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회 산하 환경운동단체 ‘에코붓다’ 현희련 사무국장 ⓒ한수진 기자

세상을 바꾸려면 나를 불행하게 하는 습관부터 바꿔야
“물 한 방울도 허투루 마실게 아니에요”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의 지향은 세 가지다. 밝은 마음과 좋은 벗, 그리고 깨끗한 땅이다. 에코붓다는 그 중 ‘깨끗한 땅’을 이루기 위해 정토회원과 대중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활동 초창기에 담론 형성과 교육에 주력했던 에코붓다가 실천 중심의 활동을 펼치게 된 이유는 “생각과 함께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생태적인 인간이 준비돼야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비주의와 물질문명에 물든 삶의 습관을 바꾸는 운동이 필요한 거죠. 불교에서는 습관을 ‘업식(業識)’이라고 해요. 인도의 카르마도 같은 뜻이죠.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내 삶의 습관을 바꾸는 운동이었어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행하는 모든 것은 습관에서 비롯된다. 세수할 때, 밥을 먹을 때, 사람을 만날 때의 작은 행동 하나까지 “깨어서 연구하지 않으면”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바꾸기 어렵다. 현 사무국장이 말하는 ‘생태적인 인간’이란 “내 삶의 습관을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인간”을 뜻한다.

잘못된 습관은 나의 삶을 불행하게 하지만, 동시에 세상도 불행하게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적 세계관은 밥 한 그릇을 두고 자신의 욕구부터 자연환경, 세계경제, 인류애까지 생각을 뻗어나가게 한다. 현 사무국장은 “밥을 먹기 전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양이 얼마큼인지 잠시라도 명상하면 나의 욕구와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선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싫어하는 음식 앞에선 그런 마음이 작아진다. 자신의 양을 생각하지 않고 욕심을 부려 음식을 많이 차지했다가는 남겨서 버리게 되므로 그만큼 환경에 해를 끼친다.

“부처님은 물 한 방울에 팔만사천 개의 생명체가 들어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현대 과학에서도 물 안에 그 정도의 미생물이 들어있음을 밝혀냈대요. 물 한 방울도 허투루 마실게 아니죠. 물속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를 유지시켜주는데, 맑은 물이 개수대로 흘러가면 더러운 물과 섞여서 다시 정화하는데 수많은 화학약품을 써야 해요. 이런 생각에 미치면 내가 마시는 물의 양도 조절하게 돼요.”

음식 남기지 않는 ‘빈 그릇 운동’, 100만 명 이상 동참해
세 끼 밥이 삶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의 경제적 가치는 18조 원에 이른다. 처리비용만 8천억 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45.1%였으니, 단순히 계산하면 식량을 수입했다가 버리는데 10조 원을 썼다는 거다. 현 사무국장은 “버리는 만큼 더 수입해야 하니, 결국 세계 식량가격 상승에 우리도 일조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식량가격은 투기자본과 기후변화, 수요 상승 등의 이유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같은 돈으로 적은 식량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음식을 남겨 버리는 행위는 지구 저편의 굶주림으로 연결된다.

“북한에서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는 인구가 2천만 명이에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자고 하면 국민 세금으로 퍼준다고 반대하는데, 국민 모두가 음식물쓰레기 배출을 10% 줄일 테니 2조를 북한에 지원하자고 하면 어떨까요?”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 ‘빈 그릇 운동’이다. 에코붓다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2004년에 시작돼 이듬해 동참 서약자가 160만 명에 이르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어린이집과 학교를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빈 그릇 운동을 교육하기 위한 교사 워크숍을 꾸준히 열고 있다.

“아이들이 빈 그릇 운동에 동참한 뒤에 학습태도와 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선생님들에게는 이만한 인성교육이 없는 거죠. 하루 세 번 먹는 밥이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어요.”

▲ 현희련 사무국장이 에코붓다 사무실에 놓인 지렁이 화분의 흙을 뒤섞어주고 있다. ⓒ한수진 기자

▲ 현희련 사무국장이 에코붓다 사무실에 놓인 지렁이 화분의 흙을 뒤섞어주고 있다. ⓒ한수진 기자

고작 밥그릇 하나로도 삶이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건, 현 사무국장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토회에서는 누구나 식사를 할 때 자신이 먹을 만큼을 사발이나 접시 하나에 덜어 먹고, 식사를 마칠 때에는 그릇에 남은 고춧가루 한 톨까지 물로 씻어 마신다. 불교의 전통적인 식사법인 ‘발우공양’이다. ‘발우’는 사발모양의 그릇을 뜻하고 ‘공양’은 밥을 먹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들에게 식사 시간은 자연과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보살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현 사무국장은 발우공양을 할 때마다 “밥 먹는 행위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행위 하나가, 작은 밥 하나 잘 먹고, 숨 잘 쉬는 것이 다른 존재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쁘죠. 그래서 밥 먹을 때 기분이 좋아요.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쓸 때에도 그렇고요. 자연이 베풀어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앞으로의 숙제로 밥그릇에 이어 삶 전체의 크기를 줄이는 운동을 구상하고 있다. 역시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정토회 활동은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이든 상근자든 자원활동가든 모두가 수행자라는 원칙에 따라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다. 현 사무국장의 경우 정토회관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에코붓다 사무국 상근자로 일하고 있는데, 그처럼 정토회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은 서울 정토회관에 40명, 문경 정토회 수련원에 100명이 있다. 밖에서 생활하거나 다른 직업이 있는 정토회원들은 가능한 시간에 와서 활동한다. 이에 따라 그의 삶은 단순하고, 느리고, 작아졌다. 현 사무국장은 “옷은 몇 가지만 있으면 되고, 양말 한 켤레가 필요하다고 하면 (공동체에서) 준다. 먹고 자는 게 해결되고 일할 공간이 있으니 특별히 필요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제가 그렇게 살아보니 좋더라고요.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되어 가는데, 그 전의 삶과 지금을 비교하면 더 행복해졌어요. 돈이 적어도 사는데 별로 걱정이 없어요. 오히려 돈이 없으니까 물건 사느라 고민하지 않고, 정리하고 벌이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돼요. 삶에서 쓸데없고 복잡한 것들이 사라졌어요. 삶이 단순하고 나를 위해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심심해요. 그래서 남는 힘과 시간을 봉사하면서 사는 거죠. 부처님의 가르침이 저를 자유롭게 해준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현 사무국장을 따라 정토회관 지하 식당에서 ‘접시’ 공양으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원래 밥을 먹는 동안 남겨둔 김치 한쪽에 물을 조금 부어 그릇을 닦아 마시는 건데, 첫 경험에 긴장을 했던지 깜박 잊고 김치를 모두 먹어버려서 숟가락으로 접시 구석구석을 살살 문질러 닦아 먹어야 했다. 그 모습을 본 현 사무국장이 “어떻게 숟가락으로 그리 깨끗하게 닦으셨어요?” 하고 웃었다. 그는 이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웃으며 질문을 듣고 웃으며 답을 했다. 그가 얼굴 전체로 빚어낸 미소와 청량한 웃음소리에서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기쁨이 넘치듯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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