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가득한 뒷간에 앉아 세상 바라보기

2007.07.24 13:28:15


 
            솔바람 가득한 뒷간에 앉아 세상 바라보기



                                                                                                                   최광수


 지리산생명교육원 뒷간, 전통적방식을 활용한 퇴비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그 변화의 속도도 어제보다 빨라지는 게 정상인 나날들, 그 속에서 우리가 한결같이 하는 게 있으니 매일의 식사가 그것이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밥 없인 살 수 없다. 살기 위해 먹는 지, 먹기 위해 사는 지 헷갈리는 게 우리네의 삶이라면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건 누구도 부인 못 할 사실이다. 그런데 이 먹는 것 못지않게 배설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개월 이상 배변을 하지 않아다는 기인의 애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음식을 먹고 뒤를 보지 않으면 온갖 부작용으로 몸과 맘이 편치 않다. 요즈음 새로운 마케팅 개념으로 자리 잡은 웰빙도 사실은 시원하고 깨끗하게 뒤를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한의사들 중에는 쾌변이 먹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뒤를 보면 볼수록 자연이 죽어가고,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내가 죽어간다면 믿들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지역, 심지어 산중의 사찰에서도 우리는 양변기나 좌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고는 물을 내리는 간편한 방식으로 일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간편하게 씻어 내린 변은 어디로 가는가? 분뇨처리장과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되기는 하지만 최종 처분지는 바다다. 똥배가 똥을 가득 싣고 해안으로부터 90~200km 떨어진 공해로 나가 사람 대신 배변의 기쁨을 만끽하고 돌아온다. 이렇게 버려지는 똥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수거와 수송 등에서 많은 경제적, 환경적 부담이 생겨난다.

  그런데 똥을 똥으로 바로보지 않고 나와 더불어 자연 속에서 숨쉬고 살아가며, 내 밥상위의 밥으로 돌아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환의 고리를 살펴 똥을 귀히 대접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귀농공동체, 생명고동체, 전통사찰, 생태주거공동체 등에서 꾸려지고 있는 생태 친화적인 뒷간들은 아직 우리에겐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것으로 치부되는 뒷간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이런 생태친화적인 뒷간들을 찾아 똥다운 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지리산생명교육원을 찾았다.

  남원 실상사 건너편 산중에 위치한 지리산생명교육원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겸하고 있으면서 봄, 가을로 귀농학교를 열어 20여명 안팎의 귀농희망자들에게 농부로서 새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는데, 이 곳의 뒷간은 전통사찰의 해우소를 변형한 형태로서 2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의 경사를 이용해 위층은 용변을 보는 뒷간이 자리 잡고 있고, 아래층은 대변을 발효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층의 출입문과 반대 방향으로 아래층에도 문이 달려 있어 출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변기는 자유낙하 방식인데 앞쪽에 소변을 분리하기 위한 깔때기를 설치하였고 그 위에 작은 소쿠리를 얹어 놓았다. 각각의 칸에서 내려오는 소변은 모두 아래층의 대형 오줌통으로 모아지는데, 이곳의 오줌이 가득 차면 밸브를 열어 바깥의 발효통에 오줌을 옮겨 담는다. 이 오줌 발효통에 EM 효소를 첨가해 6개월 정통 숙성시켜서 검은색이 되면 냄새가 없어지고 밭농사에 유용하게 쓰이는 액비가 된다. 아래층 바닥으로 떨어진 대변은 그 위에다 왕겨를 한번식 뿌려준 다음 1년에 한번 정도 발효된 똥을 꺼내어 별도의 공간에서 콩대와 왕겨 등과 섞은 다음 비닐로 덮어 다시 숙성을 시킨다. 봄에 이 퇴비를 꺼내 깻묵비료나 한살림 유기농 비료 등고 함께 밑거름으로 이용하면서 밭 1500평, 논 2800평을 농사짓는데 합성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훤칠한 키의 귀농학교 10기 졸업생인 육근남씨의 설명이다.

  이 곳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모습은 전통식 뒷간과 더불어 오수 처리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경사면을 따라 20여 미터의 돌아을 파서 갖가지 크기의 자갈돌을 가득 채워 놓았는데, 주방과 세면장에서 나오는 물은 모두 이곳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토양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이 자갈들의 표면에 붙어 자라면서 돌 사아를 흘러 내려가는 오수 속의 유기물들을 제거하도록 한 것이다. 일반적인 하수처리장과 달리 미생물들에게 필요한 산소를 전기를 써서 인위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수가 돌사이를 흘러내려가면서 공기와 접촉해 자연스럽게 산소가 녹아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량이 끝나는 곳에는 약 30~40평의 미나리꽝이 자리 잡고 있어서 2차 수질정화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미나리는 수질정화 기능이 뛰어난 식물로서 하천의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질소와 인을 제거하는데 매우 뛰어난 특성을 갖고 있다. 파릇파릇한 미나리로 꽉 들어찬 웅덩이는 오수처리장이면서 동시에 신선한 먹거리를 재배하는 밭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9월에 문을 연 지리산 생명문화 교육원의 뒷간은 전통방식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퇴비화 등을 위해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는 게 대표적인 특징이다. 똥과 오줌을 발효시키기 위해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귀농학교 학생들과 함께 자연칙화적 농법을 공부하는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교육적인 측면도 있어 매우 유효적절한 방법이라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건축 재료는 대부분 나무와 합판, 벽돌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격이나 환경적인 면에서 우수한 편이다. 다만 겨울철 보온을 위해 천장에 함석과 함께 스티로품을 얹은 것이 다소 흠이라고 볼 수 있다.

  똥의 발효를 위해서는 왕겨와 같은 부속 재료와 함께 따뜻한 온도, 원활한 공기 유통이 필요한데, 이곳에서는 아래층의 기초부분을 블록으로 설치하여 통기성을 높였고, 산중임에도 불구하고 똥이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겨울철에도 온도가 그렇게 심하게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뒷간이 갖는 생태순환적인 환경성의 유지와 교육효과, 전통문화의 복원 등에서 매우 우수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전통적인 낙하식 뒷간이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기가 불편하고 특히 밤에는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공기 순환이 부족하여 여름에는 냄새가 많이 발생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따라서 아래층의 냄새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굴뚝을 설치하거나, 건물 전체를 경사면으로부터 띄워서 공기순환을 워활하게 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좌식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편안하게 앉아서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합판이 바닥과 벽면의 주재료로 이용되면서 청결성이 매우 떨어지는데 이 부분을 개선하여 뒷간에 앉아서 편안하게 휴식하며 배변의 기쁨을 더욱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부분에서는 산청 안솔기 마을의 최세현씨댁의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겠는데, 사지에서 보는 것처럼 바닥의 나무를 잘 짜서 결을 곱게 내었고, 갖가지 서적을 비치해 짬을 내어 독서 할 수 있게 배려했다. 그리고 향이 좋은 천연 허브를 놓아 악취를 없앨 수 있도록 했다. 끝으로 쥐가 드나들고 있기 때문에 뱀이 꼬여들 수 있어 뒷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데, 아직 뱀으로 인한 사고는 없었다고 하지만 근원적인 대비책이 있어야 하겠다.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이 전통식 뒷간은 똥이 곧 밥이고, 더러움과 깨끗함이 따로 없다는 불교적인 생명순환의 가치관에 입각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위에서 제기한 문제점들을 부준적으로 보완한다면 시골지역의 공동체에서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뒷가니 갖는 아름다움은 약간의 노동으로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과 함께 똥을 먹고 건강해진 흙빛 얼굴로 방문객들을 맞는 이들의 넉넉한 웃음에서 비롯된다. 덤으로 공양간에서 현미밥과 함께 밭에서 캐낸 싱싱한 야채에 전통 된장을 얹어 먹으면 향긋한 똥 내음에 방문객도 저절로 풀빛 웃음을 머금게 된다.


소식지 2004년 7,8월 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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