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깨달음 – 덜 가질수록 미래가 있다

2009.08.12 23:19:47

출처 : 『생태발자국』, 마티스 웨커네이걸․윌리엄 리스 지음, 도서출판 「이매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소비’는 생활이다. 먹고, 자고, 일하고, 움직이는 모든 일이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일의 연속이다. 도시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시장이나 슈퍼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면 된다. 힘들여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 쓰레기도 그냥 종량제봉투에 담아 집 앞에 두면 다음날 아침 쓰레기 매립장으로 운반된다. 편리한 도시생활에는 분업이 잘 이뤄져 있어서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만들어 내는 쓰레기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요술램프 속의 ‘지니’와 같이 누군가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요정 ‘지니’를 불러내는 데는 ‘비용’, 즉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에 자연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가치가 온전히 다 담겨있는 것일까? 그래서 ‘생태발자국’은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존재는 지구에게 얼마나 부담을 주나요?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산다면 지구는 몇 개가 필요할까요? 라고.

생태발자국이란 자연에 남겨진 인간의 발자국을 의미한다. 생태발자국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에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기는 지를 또 자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생태발자국은 음식, 옷, 집, 에너지 등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토지 등 인간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토지면적을 나타낸 지수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그만큼 생활하는 데 많은 토지를 차지하는 셈이고, 자연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생태파괴지수’라고 할 수 있다. 생태발자국 지수를 처음 개발한 사람들은 캐나다 진보재정의협의회Redefining Progress의 경제학자 마티스 웨커네이걸과 윌리엄 리스이다.

늘어나는 생태적자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발자국은 일인당 1.8헥타르(5,445평)이다. 진보재정의협의회의 분석결과 2002년 한국인들의 평균 생태발자국은 1인당 4.3헥타르(13,008평)인데,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토지면적은 0.5헥타르(1,513평)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초과해서 사용한 3.8헥타르(11,495평)는 어떻게 된 것일까? 바로 한국인 한 사람이 다른 나라의 토지 3.8헥타르를 수입해서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외국에서 바나나를 수입하면, 바나나 속에는 바나나를 경작하는 데 들어간 토지, 물, 사람들의 땀방울,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들어가 있다. 이렇게 다른 곳으로부터 빌려서 쓴 양만큼의 토지가 ‘생태적 적자’로 남게 된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생태적 빚’을 지며 살고 있는 것이다. 목재 소비량을 따져보면 우리의 ‘생태적 적자’가 얼마나 큰지 잘 드러난다. 한국인이 매년 소비하는 목재를 강원도에서 생산한다면 강원도 숲은 2년, 한반도 전체의 숲은 15년이 채 되지 않아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브라질 아마존의 숲과 인도네시아 열대밀림에서 엄청난 양의 목재를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목재’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지만 그 돈이 사라지는 숲과 그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보상이 되지는 못한다.

휴대전화와 고릴라

2005년 말 통계에 따르면 한국사람 3천813만 명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휴대전화의 생태발자국은 얼마나 클까? 2001년 국내에서 소비된 휴대전화 약 1천5백만 대, 이 가운데 60퍼센트인 9천만 대 가량은 신형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재활용된 것을 빼면 820만대는 폐기처분됐다. 액수로는 1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사실 휴대전화 과소비로 버려지는 엄청난 돈의 액수보다 더 기막힌 일은 아프리카에서 벌어진다. 휴대전화의 핵심 부품으로 쓰이는 ‘탄탈 커패시터’의 원료인 ‘콜탄’을 캐내느라 아프리카의 숲이 뽑혀나가고, 강바닥 곳곳에 구멍이 뚫린다. 전 세계적인 휴대전화 수요폭등으로 콜탄 값이 10배나 뛰면서 콩고, 르완다, 앙골라 등 내전 국가의 군벌들이 서로 콜탄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콜탄 광산의 이권다툼 소용돌이 속에서 무려 500만 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세계 콜탄 매장량의 80퍼센트가 묻혀 있는 콩고는 고릴라의 지구상 마지막 서식지이기도 하다. 콜탄 채굴 열풍이 불면서 고릴라 수가 지난 5년 동아 80~90퍼센트 줄어들었고, 코끼리를 포함해 야생동물 90퍼센트가 사라졌다. 우리가 멀쩡한 휴대전화 하나를 폐기하는 순간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생명들은 ‘비명’을 지르게 된다.

아프리카가 최첨단제품 원료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면 중국 광둥성 기유마을은 최첨단폐기물로 수난을 겪고 있다. 대형컴퓨터에서 휴대전화까지 이른바 ‘e-쓰레기’는 유독성 때문에 지난 1989년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을 통해 국제간 이동이 금지됐다. 그러나 e-쓰레기 최대 방출국인 미국은 협약 비준을 유보한 채 엄청난 양의 e-쓰레기를 아시아 특히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곳에서 1년 동안 받아들이는 컴퓨터 쓰레기를 차곡차곡 쌓으면 자유의 여신상 두 배 높이로 기유마을 전체를 덮게 된다. 부서진 채 방치된 모니터에서 나온 납과 수은으로 오염된 지하수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트럭으로 물을 실어다 마시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이곳 주민들은 하루 1.5달러를 벌려고 마스크 한 장 얼굴에 걸치지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 플라스틱을 태우고, 모니터 유리를 깨고, 부품에 있는 금·구리·철·팔라듐을 분리하고 있다. 이 위험한 작업에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민 대부분은 산화연·수은·납·카드뮴·비소·크롬과 같은 독성물질에 노출돼 있다. 콩고와 중국 기유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계인의 대다수는 모르는 채 살아간다.

길들여지는 ‘소유의 욕구’

커피, 설탕, 초콜릿, 종이 한 장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파괴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희생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소비에 대해 ‘죄의식’을 갖자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만족’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 소비를 조장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원인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윌은 68달러 25센트짜리 나이키 신발을 사기 위해 저금을 하고 있다. 윌이 주당 3달러25센트를 번다면, 몇 주 동안 돈을 모아야 할까?” 미국 16개주에서 사용되는 초등학교 수학교과서에 실린 문제다. 한국의 평균적인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100만 번의 상업광고를 접한다는 통계도 있다. 어릴 때부터 ‘소유’욕구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디즈니 만화영화<101 달마시안>이 큰 인기를 끌자 아이들의 성화에 못 견딘 미국 가정에서 앞 다투어 달마시안을 구입했고, 얼마 안 가 미국 전역은 버려진 달마시안으로 홍역을 치렀다.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가 성공하면서 열대어 수요가 급증해 남태평양 바누아투 산호초 일대 열대어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한때 포켓몬스터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를 모으려고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모은 것과 같은 사례다.『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은 현대인을 두고 “죽어라고 일해서, 죽어라고 사재끼고 또 죽어라고 버린다.”라고 표현했다.

쇼핑중독증은 ‘불필요한 물건을 마구 사들인 뒤 무엇을 샀는지 정확히 기억도 못하고, 쇼핑을 못하면 왠지 불안해하는 증상’을 말한다. 미국 사회 쇼핑중독을 지독한 독감 바이러스에 비유해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조어로 만들어낸 존 더 그라프는 어플루엔자를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갖고 있다”고 정의 했다. 그라프가 쇼핑중독에 대해 내리는 처방은 간단하다. “소비에 대한 욕구를 줄여라.” 자연자원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쓰레기를 버릴 곳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가 미덕이자 경제발전척도인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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