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은 나의 실천 | 권혜숙

김 : 정토회 식구가 된 계기와 활동한지 얼마나 됐는지 간단하게 얘기해 달라.
권 : 96년도에 옆집 새댁이 나에게 <정토지>를 일 년 동안 선물했다. 정토회를 만나기전 마음이 허전한 상태였다. 교회, 절에 가도 안 채워지더라. <정토지>를 보는 순간 내가 궁금하던 게 다 있었다. 다섯 번씩 읽었다. 돌아서면 또 보고 싶고. 다음 달 <정토지>가 나올 때까지 계속 봤다. 처음엔 법륜스님 법문보다 서암스님 법문을 많이 읽었다. 일 년 정도 지나서 문경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갔다. 1박2일 정진하는데도 충격이 좀 많이 왔다. 힘들 때 ‘깨달음의 장’에 가서 현실은 그대로 있는데 맘 하나 바꾸니까 완전히 천국이었다. 그래서 내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고 표현했다.

김 : 어쨌든 정신세계도 많이 바뀌게 되었나?
권 : 도덕적으로나 뭐나 완벽하게 살았으니까 제가 옳다는 아집이 너무 컸다. ‘깨달음의 장’ 갔다 와서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고, 남편도 있어서 감사하고, 애들도 그렇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알아차리고 되돌리면서 여기까지 왔던 것 같다.

김 : 마음공부를 하신 건데 사회생활 할 때 에코붓다 관점에서의 자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권 :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은 허투루 써야 할 게 하나도 없더라. 봉사를 시작한 건 2000년부터 했다. 그 전엔 알바로 일했다. 정토회 다닐 차비만 있으면 되니까 생활비는 30만원 받겠다고 했다. 절약하며 살다보니 자연히 환경 차원에서 쓸게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알바하면서 차비하고 법당에 들어가는 돈은 내 돈으로 하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돈을 불려준다고 해서 줬는데 나중에 원금도 없더라. 내가 그 기간을 소비한 것 같다. 그냥 봉사하면 됐는데 머리 쓰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돈 없으니 30만원만 가지고도 생활할 수 있었다.

방배동 텃밭 분양 받아서 고구마, 상추를 심었다. 고구마 캐면 동네사람들 다 나눠 먹었다. 야채도 나눠먹고…. 내가 항상 부자였다. 사용할 데가 많으면 가난한데 사용할 데가 없으니 항상 부자였다. 다른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데 여행을 가게 되면 외식하지 않고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간다. 밥까지 준비해간다. 불교대 다니면서부터 월요일마다 서초동에서 봉사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검소하게 살았던 게 몸에 배어서인지 지금 생활하는데 별로 어려운건 없다. 애들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우리집은 반찬 많은 편이다. 한동안 북한동포 돕기 할 때는 3찬으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남편에게 마비가 왔다. 내가 너무 절약만 생각했나보다 생각 들어서 영양가 있는 음식도 가끔 챙겼다.

김 : 월 30만원을 남편이 주셨다는데 너무 적지 않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주신 건 아닌가?
권 : 아니다. 우리는 애들에게도 한 달 사용할 용돈의 목록을 다 써서 내라고 한다. 아들은 40만원이더라. 나는 30만원이라도 돈을 안 쓰니까 북한동포 돕기에 100만원 보시하고, 미국 LA 수련원 개원할 때 150만원 보시했다. 인도도 내 돈으로 갔다 왔다. 30만원도 남는다. 관리비 아끼다보면 전기 아끼고, 가스 아끼고, 수도 아끼고 하다보면 관리비도 10만원이 남더라. 내가 어머니한테 일주일에 반찬 두 번 해드렸다. 반찬 하니까 남편이 10만원을 올려줬다. 지난달엔 70만원을 생활비로 주더라. 그래서 관악법당에 100만원 보시했다. 내 수입은 하나도 없다.

김 : 원래 근검절약하는 게 어릴 때부터 몸에 베인 건가? 아니면 정토회 와서 생긴 건가?
권 : 우리 형제가 8남매이다. 오빠가 나를 학교에 보내고, 나는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 결혼할 때도 내가 벌어서 결혼했다. 결혼 전에 동생이랑 같이 자취했는데 내 월급에서 동생 등록금도 내고 내 결혼 자금도 마련했다. 그래서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김 : 원래부터 권혜숙님은 계획성 있게 사신 것 같다.
권 : 그렇다. 남편도 내가 요구한 만큼 준거다.

김 : 오늘 녹취한 내용을 집사람한테 꼭 들려줘야겠다.(웃음)
권 : 아들이 40만원 달라고 할 때도 차비하고 애들하고 외식하려면 그만큼 들겠구나 생각했다. 더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들 나름대로 필요하니까 달라고 했을테니까, 나는 나 나름대로 필요하니까 그만큼 요구했다.

김 : 그럼 아버님이 아들 용돈 따로, 생활비 따로 주시는 것 같다.
권 : 통장으로 보내준다. 작은 아들이 해군장교로 들어갔는데 월급을 지금까지도 공개 안한다. 대략 150~160만원 됐던 것 같다. 100만원은 저금하고 남은 걸로 생활하고 보너스 타면 그거 쓰고 했다. 이번에 제대를 했는데 우리 남편이 작은애한테 100만원 입금시켜줬다. 큰 애도 100만원씩 주다가 취업해서 안줬는데 작년 5월에 공부한다고 그만둬서 또 100만원씩 입금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각자 그렇게 다 살고 있다.

김 : 보내주신 자료를 보면 쓰레기 안 나오는 요리 잘한다고 특징을 적어놓았더라. 쓰레기 안 나오는 요리를 예로 들어 자세히 말해 달라.
권 : 아까 나물 두 가지가 나왔는데 호박나물, 버섯 두 개는 소금을 거의 안 넣는다. 어떤 사람들은 간이 안 되면 맛이 없다 하는데, 우리 가족은 밥처럼 먹는다. 항상 싱거운 반찬 한두 가지는 있어야한다. 나머지 거의 김치 종류로 만든다. 고구마 줄기 김치도 있다. 고구마 줄기 나물을 하면 며칠만 지나면 시어버린다. 오이와 무도 김치처럼 만들면 일주일 지나 익어도 먹을 수 있다. 항상 식구도 먹을 수 있고 안 먹으면 내가 먹을 수 있도록 시장을 볼 때부터 생각을 하고 장을 본다. 그리고 누가 주는 것도 이걸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나 생각을 한다. 남편에게 여름에 수박을 사오지 말라고 한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니까… 수박의 붉은 부분은 다 먹고 지렁이를 주면 잘 먹는다. 지렁이 통이 지금 다섯 개 있다.

김 : 베란다 복도에 있나?
권 : 그렇다. 6월 넘어가면 더워서 토기 화분으로 해야 공기가 통한다. 겨울에는 11월 넘기면 얼어 죽으니까 그 전에 안에 들여놔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다 지렁이에게 주고 뼈다귀나 파리 끓는 건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그래도 많이 나온다.
김 : 요리가 궁금한데 요리에 대해서 소개해 줄 만한 것은 에코붓다에서 강의를 해도 될 것 같다. 권혜숙님의 특별한 레시피를 소개한다면?
권 : 버섯이나 미나리를 데치고 난 후 그 국물을 찌개 끊일 때 육수로 사용한다.
김 : 예전에 정토회에서 지렁이 분양 받아서 집에서 키우는데 잘 안되고 힘들더라. 하루살이도 끓고 하얀 벌레도 나오고..
권 : 하얀 벌레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 자잘한 게 다 분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 : 음식물 처리를 지렁이한테 어떻게 하는지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권 : 내가 키워보니 지렁이가 오이하고 토마토를 별로 안 좋아하더라. 독이 있는지 토마토 잎을 갖다 놓으면 꼼짝도 안하다. 토마토엔 벌레가 안 달라붙는다. 오이도 마찬가지. 바나나도 안 넣고. 얘들이 뭐를 좋아하는지 다 안다.

김 : 뭘 좋아하나?
권 : 수박을 제일 좋아하고, 양파껍질도 넣으면 다 붙어 있다. 수박 껍질은 다 삭아버리고 투명한 하얀 막만 남는다. 양배추는 지렁이가 안 먹고 도로 살아난다. 그게 양배추 자체가 섬유질이 딱딱해서 썩지 않고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양배추는 버릴 일이 없다. 파란 부분은 순대 볶음할 때 넣으면 다 먹는다. 우리 애들이 항상 식당보다 맛있다고 한다.(웃음)

김 : 지렁이 키운지 얼마나 되었나?
권 : 지렁이 지금 10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거부반응이 있었는데 우리 애는 너무 예쁘다고 한다. 나도 신기하다.

김 : 그 두 가지 외에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권 : 시장바구니 항상 갖고 다니는데 비닐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가능한 거의 쓰지 않는다.
김 : 3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하니까 음식 외에도 실천하는 것이 참 많을 것 같은데… 물, 전기, 가스 아끼는 노하우 있나?
권 : 전기는 아들이 있으니까 내 맘대로 안 된다. 편안하게 놔둔다. 같이 살 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샴푸는 쓰는데 헹굴 땐 레몬 식초 만들어 놓고 사용한다.

김 : 저녁에 불 끄고 생활한다던지. 그런 건은?
권 : 선풍기는 거의 안틀고 에어컨도 있는데 누구 줬다. 가스도 최대한 아끼고.

김 : 겨울엔 난방 어느 정도 하나?
권 : 마루와 안방은 안 해도 남향이라 훈훈하다. 너무 추울 땐 전기장판 잠깐 쓰고 애들 방은 난방 틀어준다.

김 : 그래도 난방 전혀 안하면 춥지 않나? 워낙에 추위를 타지 않는 건 아닌가?
권 : 그런 것도 있다. 화장대 앉으면 엉덩이는 시리다. 그래서 옷 꺼내서 앉는다.

김 : 권혜숙님이 인터뷰 세 번째인데 자발적 가난이다, 청빈이다 이런 얘기가 요즘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데 에코보살님들이 정말 더 그런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권 : 나만 이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도 이제 좀 변하는 것 같다. 내가 실천하는 것을 보고 내가 뭐라 안 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 정토회 다니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라 오는 것 같다.
김 : 2000년대 들어서 환경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건가 이런 문제 제기가 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게 내 자신부터 실천하는 거다. 정토회는 그 부분이 되는 것 같다. 근데 주위 사람들한테, 사회로 확장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오는 예는 있나?
권 : 내가 맡은 모임의 총무를 예전엔 다른 사람이 맡았었다. 그 사람이 맡았을 땐 소비 위주였다. 나는 많이 준비하지만 절약해서 딱 필요한 것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토회 빈그릇운동과 관련된 영상들을 보여준다. ‘아 저렇게 해도 살 수 있겠구나’ 한다. 근데 체험하지 않으면 막연하게 들리는데 옆에서 실천하는 것 보면 나도 한번 해보자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요즘에 ‘인간의 조건’ 프로그램 보는데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다. 매스컴에서 이런 걸 보여 주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 그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

김 : 주변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 예전 총무와 다르게 해도 모임에서 반발 없나? 예를 들어 영상 보여주면 ‘너나 해라’ 이런 거 없나?
권 : 그렇지 않다. 실제로 제가 몸소 행동을 하기 때문에 뭐 하고 싶다하면 하라고 하지 뭐라곤 안한다. 모임 중 한 사람은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차려야 맘에 드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몇 년을 소박하게 진행하니 지금은 줄여도 기분 좋게 먹는다.

김 : 이렇게 알뜰하게 사는 게 몸에 배어 있는데 신혼 초 남편과 갈등은 없었나?
권 : 그런 거 없었다. 신부님 소개로 정 안 든 상태로 결혼해서 신혼초에는 남편 식성을 파악을 못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반찬은 다해줬다. 시어머니는 일품요리였다.
김 : 능력으로 잡은 건가?(웃음)
권 : 근데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안했다. 꼭 말로 해야 되나 그러면서…. 약으로 먹지 맛으로 먹냐고 한다. 초창기에 잔소리 진짜 많이 했다. 화장실 불 안 끄면 뭐라 하고. 화장지 못쓰게 하고. 화장지 왜 이렇게 많이 쓰냐 하고. 나는 손수건 사용하지 화장지 안 쓴다.

김 : 잔소리 하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나?
권 : 처음엔 싫어했다. 예전엔 뭐를 해야겠다는 게 있으니까 상대가 거부반응 있었는데 지금은 상대한테 그런 거 없다. 나만 하니까. 지금은 남편이 따라온다.

김 : 따라오시는데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
권 : 여름 명상을 2000년도부터 안 빠지고 다녔다. 다른 건 못해도 명상은 했다. 깨달음의 장은 갔다 왔고 일 년 동안 제대로 살려면 명상은 꼭 해서 원위치를 유지하고 싶었다. 일 년에 한번이라도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런 계획이 있었다. 근데 남편이 아프면서 세 번 빠졌다. 재작년 겨울엔 무슨 일 있어도 가야한다고 하고 갔다. 근데 그 때 명상 할 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의 기억이 보이더라. 명상 하면서 계속 울었다. 신혼 때 그렇게 울었었다. 그 억울하고 분한 마음, 내가 왜 결혼해서 고생하나, 그게 너무 컸다. 남편이지만 다 얘기는 못했다.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저녁만 되면 울었는데 명상 갔을 때 그게 그대로 나오더라.

김 : 그 이후에는?
권 : 갔다 와서 두 달 동안 울었다. 갔다 오자마자 앉아서 남편한테 얘기 좀 하자고 했다. 남편은 내 마음을 모르니까 옛날 일 같고 어쩌자고 그러냐고 했다. 내가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닌데 그냥 앉아서 울었다. 눈물이 안 그쳐서 울다가 아들 방에 가서 울고. 그러고 작년 겨울에 다시 갔다. 남편은 항상 “밥 달라고 하면 밥 안주고 뭐해!” 이랬다. 좋게 달라하지 왜 화를 내냐고 하면, 내가 언제 화냈냐고 했다. 그런데 작년 명상 갔다 온 후로 그게 없어졌다. 나는 남편이 제일 무서웠다. 명상 다녀온 후는 남편이 퇴근하면 ‘오셨어요’하고 내 할 일만 하고. 내 기분 나쁘면 밥만 챙겨줬다. 명상할 때 나를 본 것 같다. 그러면서 남편이 화내면서 말 하는 것이 없어지더라. 지금은 너무 편한 친구가 됐다.

김 : 인터뷰한 대부분의 에코보살들이 남는 시간이나 돈, 에너지를 정토회 다니면서 기부를 한다. 대부분의 가정이 많이 벌어서 쌓아놓고 많이 쓰려고 하고, 풍족하게 누리려고 한다. 권혜숙님은 최소한으로 쓰고 보시를 하고 봉사도 하는데 이렇게 사는 삶의 모습과 일반적으로 사는 경우와 비교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다.
권 : 어제 한 봉사자를 만났는데 그 분은 한 달에 한두 번 봉사를 하러 온다. 일주일에 한번 와서 봉사 해달라고 했더니 이것저것 배울 것이 많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 오면 정토회에 전념해야 하는데 종교에 빠지는 것은 싫다고 했다. 정토회를 다니기 전에 나도 많이 배우러 다녔다. 지금 현재로서 나는 너무 부자다. 그게 다 욕심인 것 같더라.

김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3-4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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