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부처님의 빈그릇(1)


부처님께서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말씀을 발우공양을 통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발우공양은 불교의 식사법으로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발우’는 사발 모양의 그릇을 뜻하고, ‘공양’은 밥을 먹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발우공양은 우리 수행자들에게 자연과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보살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하루 평균 14톤(2019년 환경부 통계 기준)에 달하는 음식물쓰레기가 만들어지는 현실을 비추어보면, 자연이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다는 발우공양의 정신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이러한 발우공양의 전통을 잇는 정토회의 빈그릇운동을 되살피고, 부처님의 말씀을 되살리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특집|부처님의 빈그릇

‘음식’이란 말에 ‘쓰레기’가 붙지 않는 사회

현희련|사단법인 에코붓다 사무국장

 

“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두 명의 우바새로부터 최초의 공양을 받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모두 지니셨는데, 나는 어떤 그릇으로 이 음식을 받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천왕이 금발우를 부처님께 드리자 “합당하지 않다”라며 거절하셨습니다. 이때 동방의 지국천, 서방의 광목천, 남방의 증장천, 북방의 다문천 등 사방의 천왕들이 다시 돌그릇 하나씩을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부처님은 이 발우 네 개를 포개어 사용하셨고, 그 후 제자들도 부처님을 따라 네 개의 발우를 써서 공양하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

 

발우공양은 지천에 있는 돌그릇을 발우 삼으신 부처님의 뜻을 이어 만물의 소중함과 자연의 감사함을 되새기기라는 승가의 식사법입니다. 정토회는 이 발우공양의 전통을 현대에 되살려 20여 년 전부터 접시공양을 해왔습니다. 접시공양은 각자의 접시에 먹을 만큼 음식을 담아 모두 먹은 후 접시에 남은 음식 찌꺼기는 김치 조각이나 무 조각을 이용하여 깨끗이 닦아 마무리하여 먹는 것입니다.
음식물을 귀히 여기는 이러한 실천이 정토회를 넘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빈그릇운동입니다. 정토회에서 빈그릇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발우공양과 접시공양을 해오며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일인가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적게 사고, 적게 먹고, 적게 벌어도 좋은 사회

지금은 어느 집 식탁에서건 먹지 않는다고 꾸중을 듣지, 남긴다고 꾸중 듣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만큼 먹거리가 풍성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기 힘들어졌습니다. 방송에서도 무엇이 맛있는지, 무엇이 건강에 좋은지만 알리며 음식을 즐거움과 탐닉의 대상, 미용과 건강의 도구로만 여깁니다. 한 그릇의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자연물의 노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사회는 비만과 같은 성인병이 어린아이에게까지 나타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절제력 부족한 개인의 탓이 아닙니다. 음식물을 즐거움과 쾌락의 수단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의 빈약한 정신문명 때문이지요.


▲ 정토회의 접시공양. 김치나 무 조각을 이용해 깨끗이 마무리하여 먹는다.

음식이란 단어에 쓰레기란 말이 따라붙지 않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우선은 적게 사고, 적게 만들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알뜰한 살림살이를 상식으로 여기는 사회일 것입니다. 많이 버리기 위해 많이 벌어들이려는 삶을 어리석게 여기고, 딱 필요한 만큼만 벌어서 딱 그만큼만 소비하는 삶이 고급스러운 삶으로 존경을 받게 되겠지요. 그래서 가정에서건 식당에서건 버리는 음식이 없는 식사 문화가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당연히 영양 과잉이나 과식 등으로 발생하는 비만이나 성인병 등도 사라질 것입니다, 많은 음식을 만들고, 또 음식물을 버리느라 애쓰는 주부의 노동도 줄어들 것입니다.

상상해보십시오.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의 소중함과 그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이의 고마움을 느끼며 감사하게 먹는 식사 문화가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말이에요. 우리는 이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한 술의 밥을 뜰 때, 먹지 못하는 이의 아픔을 생각하며 굶주리는 이들에게 보시하는 나눔의 문화,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생쓰레기를 마을마다 모아서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퇴비화 작업을 하는 무배출 문화, 그렇게 만든 거름을 화초나 채소에 주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노동의 문화. 마을 주민들이 공동퇴비장과 채소밭을 운영하며 행복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 이런 과정들을 함께 하며 생명의 가치와 노동의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참다운 교육 문화, 지역 주민들의 활동을 도우며 합리적인 음식물쓰레기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는 지자체 협력의 문화(Governance), 빈그릇의 나눔과 비움의 정신은 오늘날의 경쟁과 소비의 문화를 대신할 것입니다.


빈그릇운동, 세계 문명의 새로운 모델로

음식물에 쓰레기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선 음식을 생명으로 보아야 합니다. 음식을 만들어주는 물과 태양과 바람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연기(緣起)적 세계관을 이해하고 실천하겠다는 가치관의 혁명이 필요한 것이지요. 법과 제도의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연기적 세계관을 우리 삶의 방식으로 실천하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정토행자들은 이런 면에서 참 다행입니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빈그릇운동을 그 출발점으로 삼으면 되니까요.

정토행자들의 꾸준하고도 자연스러운 빈그릇운동을 통해 음식물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비움과 나눔의 삶이 고급스럽고 행복한 습관이라는 것을 증명해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소비문화를 변화시키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빈그릇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으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 소비물질 문명의 폐해를 딛고 새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단순하고도 소박한 삶의 모델입니다. 우리 정토행자들의 수행과 실천으로 빈그릇운동이 세계 문명을 바꾸어나갈 날을 꿈꿔봅니다.

 


 


 

 

 

*에코붓다 소식지 2021년 11·12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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