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북에서 온 편지

 

두북에서 온 편지

넉넉하게, 덕분에 두북의 김장

한혜련|두북농사팀장


김치는 반찬 가게에서 사 먹는 것인 줄 알았고, 김장은 이미 예전에 끝난 전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 6년 차, 김치에 밥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저를 보면서 역시 사람은 변한다는 걸 느낍니다. 1년 내 비바람과 더위를 잘 이겨낸 배추와 무, 또 이들을 위해 들였던 정성을 생각하면 김칫국물마저 귀하게 여겨집니다.

 

올해는 두북수련원에서 두북공동체와 서울공동체가 함께 1200포기의 배추, 600주의 무를 김장 하기로 했습니다. 수련원에서 김장 준비란 배추, 무 등의 재료와 양념 준비, 그리고 장화, 앞치마, 소금물을 담을 고무대야, 배추를 절일 절임풀, 배추물을 뺄 때 사용하는 받침대 등의 물품을 씻어 잘 말리는 모든 과정을 뜻합니다. 보통 3주 동안 3~40명이 함께 준비하는데, 올해는 나비장터를 치르느라 일주일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습니다.

1000주의 무를 뽑으며, 뻐근한 허리는 덤

일단 준비 첫날은 배추를 담을 마대자루와 방수천을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전날 비가 온 탓에 일감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김장 준비와 비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비가 온 다음 날 밭에 덮어둔 비닐을 벗기면 마른 땅에서 걷는 것보다 5배는 쉽기 때문이지요. 또 비가 온 다음에는 금방 추워지기 때문에 이 일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밭의 비닐은 흙에 수분을 유지하고, 잡초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덮어두었던 것이지요. 밭에 도착한 법우님들과 저는 마치 정예요원처럼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고정해 두었던 핀을 뽑고 비닐을 벗기고 또 그 위에 묻어있던 흙을 빠른 속도로 털어냈습니다.


▲ 똘똘한 모습을 드러낸 1000주의 무들. 밭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탓에 모두 손으로 날라야 했다.

한편 학교에서는 김장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올해는 서울 평화재단에서 썼던 문을 목공팀에서 재활용해 절임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절임풀이란 아이들이 놀법한 수영장만큼 커다랗고 네모란 통으로 배추를 소금에 절이기 위한 공간입니다. 나비장터에서 법당을 철거하며 가져온 문을 재활용해 탁자를 만든 것처럼, 절임풀도 우리가 사용했던 문을 되살림해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올 김장을 마치면 해체해 내년에 다시 조립해 쓰기로 했지요. 절임풀을 뚝딱뚝딱 만든 법우님들은 바로 배추 3단 씻기 틀을 만들었습니다. 3단계 설거지처럼, 배추 역시 1,2,3단계를 거쳐 씻어내는데 이 때 필요한 것입니다. 이 틀 역시 법당에서 철거하고 가져 온 나무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튿날은 고무통, 사각박스, 받침대, 장화, 엉덩이 방석 등 운력 물품들을 씻었습니다. 김장의 규모가 크다보니 두북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낸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옮기기 힘든 것들은 학교에서 씻어내고 일부는 트럭에 싣고 냇가로 갔습니다. 본래 깨끗하게 보관하는지라 물에 풍덩 담가서 쓱쓱 문지르니,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물품들이 워낙 많아 하루 종일 해도 끝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손발을 잘 맞춘 덕에 다행히 반나절 만에 끝났습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는, 무를 심은 밭으로 향했습니다. 김장에서 배추만큼 중요한 것이 무이지요. 올해 무를 심은 밭은 깊은 산 속으로, 두북수련원에서 차를 타고도 20분을 더 가야했습니다. 쌀쌀한 찬 바람을 맞고, 서리를 한 두 번 맞은 가을무는 단단하고 달콤합니다. 김장에는 600주 정도의 무가 필요하지만, 정리도 할 겸 밭에 있는 무를 모두 뽑기로 했습니다. 어림잡아보니 1000주 정도가 되었고, 7명이면 충분하리라 짐작하고 출동했습니다. 하지만 실컷 무를 뽑고 수확용 상자에 담고나니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차까지 옮기는 일이었지요. 길이 비좁아 차를 밭 근처에 댈 수 없었던 탓에 20kg가 넘는 박스들을 옮겨야 했지요. 큰 무는 한 박스에 13개, 작은 무는 20개 이상 들어갔는데 모두 70박스가 넘었습니다. 평소 다른 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 무에게는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농사는 역시 쉬운 일이 없습니다. 뻐근한 허리를 뒤척이는 법우님들을 보니 내심 미안하기도 하고, 내년에는 분명히 다른 수를 내야겠다 싶었습니다.


▲ 김장은 준비가 8할. 김장에 쓰일 물품들을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사진 맨 왼쪽이 한혜련 님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김장 하루 전, 배추와 무의 양 등을 고려해 일하기 쉽도록 모든 물품들의 위치를 잡습니다. 장화, 장갑 등은 건조대와 화로 근처에 둡니다. 법우님들이 몸도 녹이면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말이지요.

절임풀이나 3단 씻기틀처럼 물을 다루는 물품들은 운동장 흙과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바닥에 큰 방수천을 깝니다. 그렇게 해도 오돌토톨한 작은 돌들과 모래로 바닥이 들뜨기 때문에 키즈카페에서 재활용 물품으로 가져온 푹신한 매트를 방수천 위에 또 깝니다.

그제야 절임풀을 그 위에 옮겨놓습니다, 네 개의 나무문을 이어붙인 것으로 바닥이 비었기 때바닥에 방수천과 비닐을 한번 다 깔아 물이 안 새도록 하고, 김장하는 내일 아침까지 밤새 낙엽과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한 겹 더 덮어줍니다. 한쪽에서는 생강 다듬기, 선물용 김치에 들어갈 마늘 다듬기 등 틈틈이 준비 해둔 재료를 다듬어 놓습니다.

이제 김장 준비 완료!

드디어 김장 첫날(두북의 김장은 3일에 걸쳐 합니다). 오전 내내 수확한 배추를 소금에 절이기 위해 다듬습니다. 퍼런 겉잎을 떼어내고 꼭지에 살짝 칼집을 냅니다. 아삭한 맛을 살리기 위해 배추를 쪼개지는 않습니다. 1200포기의 배추를 진한 소금물에 담궈 낸 뒤, 절임풀에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모든 배추가 하나의 절임풀에 다 들어가면, 저녁 공양을 마친 뒤 뒤집습니다. 과하게 절여지지 않도록 아래쪽에 있던 배추는 위쪽으로, 위쪽에 있는 배추는 좀 더 절여질 수 있도록 아래쪽으로 자리를 바꿔줍니다.


▲ 내 집 일처럼 함께 해준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올 김장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김장 둘째 날. 새벽 공양을 끝내고 절임풀에 있는 배추를 모두 건져 씻어서 쟁반 위에 차곡차곡 엎어둡니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꼭지를 땁니다. 공양간에서는 양념을 준비하지요, 다시마와 표고버섯 우린 물로 육수를 내고 늙은 호박과 청각, 고춧가루, 생강, 기다랗게 채를 낸 무를 버무립니다.

이제 오후부터는 치대기입니다. 빨간 김치소를 소금에 절인 배춧잎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지요. 벌겋게 잘 버무려진 배추가 김치통에 차곡차곡 쌓이면 이동팀은 냉큼 날라다가 저온고 등에 보관합니다. 또 빈김치통을 얼른 가져다 일손이 끊기지 않도록 합니다. 양념이나 절인 배추가 떨어지지 않도록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고요.

김장,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3일간의 축제

두북에서 김장은 3일간의 축제입니다. 하지만 김장을 준비하는 내내 축제를 즐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고되고 조금은 바쁜 마음이 들었지만 김장 준비를 돕기 위해 찾아주신 봉사자분들 덕에 기운내 일찍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은 제가 공동체에서 준비했던 여섯 번의 김장 중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섬에서 자랐는데요. 김치를 거의 먹지 않았고, 집에서 김장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김치는 반찬 가게에서 사 먹는 것인 줄 알았고, 김장은 이미 예전에 끝난 전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수련원에 들어와서 처음 김장이라는 걸 해보았지요.

처음에는 김치를 왜 먹어야 하나, 공양 때 접시를 닦기 위해 먹는 김치라면 직접 굳이 담가야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 6년 차, 김치에 밥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저를 보면서, 역시 사람은 변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키운 배추와 무, 생강으로 담근 김치이기에 김칫국물마저 가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히 먹게 됩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덕분에 올 한 해도 김장으로 추수의 계절에 넉넉함을 더했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에코붓다 소식지 2021년 11·12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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