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북에서 온 편지

 

두북에서 온 편지


두북 농부의 겨울나기

한혜련 |두북농사팀장


농부에게 겨울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틈틈이 콩, 팥 등 수확한 작물의 씨앗을 골라 놓는 일도 하고, 까불린 들깨를 열심히 씻어 틈틈이 자루에도 담아둡니다. 오며 가며 땅콩껍데기도 까고, 새벽 수행을 마치면 땅심을 살릴 퇴비 공부도 합니다. 농촌의 겨울은 한가롭되 한가롭지 않습니다. 농부로 살다 보니 무시무종 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몸소 깨우칩니다.

새벽 발우공양을 마치면 아침 6시 40분. 여름이었다면 이미 밖에 나가서 일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아직 해도 안 뜬 시간입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어두운 밖을 보며, 공동체 도반들은 삼삼오오 사무실의 화목난로 앞에 모입니다. 새벽 청소 시간에 불을 피운 덕에 사무실은 훈훈합니다. 저도 법복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무실 화목난로 옆 책상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오늘 할 일을 살핍니다.

흙 공부, 땅 공부, 소똥 공부
겨울인 덕에, 아침 일찍 밭에 나갈 일이 없습니다. 대신 요즘은 농사 공부를 합니다. 이번 겨울 제 관심사는 ‘퇴비’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지난해 지출 명세를 정리해보니 퇴비 구매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유기농업을 하려니 상대적으로 비싼 유기농 인증을 받은 퇴비를 사야 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이 비용을 좀 줄여야겠다 싶습니다.

두 번째는 땅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현재 두북수련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땅들은 이제까지 농사를 짓지 않았거나 화학 농법을 사용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땅심이 많이 부족합니다. 작년에 진딧물, 무름병 등의 병충해로 배추와 고추 농사에 피해가 컸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법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조금 더디더라도 지친 땅을 건강하게 되살리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한 해 동안 울고 웃게 한 고추가 밭으로 돌아가던 날. 싱숭생숭, 시원섭섭했다.

‘방에 있으면 오물이지만 밭에 가면 거름’
두북수련원 근처에는 축사가 많습니다. 창문을 열면 쌀쌀한 바람과 함께 아직도 구수하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소똥 냄새가 흘러들어옵니다. 늘어난 축사 때문입니다. 7년 전 행자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두북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소를 키우는 농가가 많아졌습니다. 육류소비가 해마다 늘어난 탓이겠지요.
이 작은 동네에 소들이 저리 많이 살고 있으니 퇴비로 하자면 소똥만큼 구하기 쉬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저는 소똥들을 무시했습니다. 방목해서 유기농으로 키우는 소가 아니면 그 똥도 유기농법에는 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퇴비 공부를 하면서 일반 축사에서 나오는 소똥도 적절한 퇴비화 과정을 거치면 유기 퇴비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기농업에는 완전히 부숙(가축분뇨가 물거름 되는 과정을 거쳐 식물과 토양에 안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것) 된 퇴비를 써야 합니다. 발열과 감열, 숙성의 3단계를 거치는데 최소 4~5개월 걸립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연구하다 보면 유기농 퇴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방에 있으면 오물이지만 밭에 가면 거름’이라는 말씀을 농사를 지으면 체험합니다.

겨울, 끝이자 시작의 계절
농촌의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는 한가하지만, 늘 일이 있습니다. 어제는 들깨를 씻어서 자루에 담았습니다. 들깨 농사는 이미 가을에 끝났지만, 열심히 까불린 들깨를 겨우내 시간이 날 때마다 씻어서 7kg, 혹은 20kg 단위로 포대에 담아둡니다. 언제든 필요할 때 바로 기름을 짤 수 있도록 말이지요.
농부가 되기 전 도시에 직장을 다닐 때는 일할 때나 늘 때나 늘 조급했습니다. 일할 때는 빨리 마치려고 동동거렸고, 놀 때는 이 시간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붙잡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농부로 살면서 일과 놀이의 구분이 희미해집니다.

또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도 배웁니다. 밭에서 고추를 다 뽑고, 밭을 감싸두었던 비닐을 다 정리하고 나서는, 곧바로 퇴비를 주어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땅콩을 모두 수확하고 나서도, 쉬엄쉬엄 땅콩껍데기를 까두어야 합니다. 또 틈틈이 콩, 팥 등 수확한 작물의 씨앗을 골라 놓는 일도 합니다. 그래야 다음 농사지을 때 종잣값을 아낄 수 있습니다. 한때는 왜 이렇게 일이 끝이 없을까 불평도 했는데, 그것이 삶의 이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 해의 끝은 다음 해의 시작이고, 한 인연의 끝은 다른 인연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끝도 시작도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농사를 지으며 겸허히 깨우칩니다.


▲올 한 해 함께 할 두북의 농부들



*에코붓다 소식지 2022년 01·02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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