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북에서 온 편지

 

두북에서 온 편지


농부로 살고 있어 참 행복합니다

한혜련|두북농사팀장


꽃봉오리들이 툭툭 얼굴을 내밀고 활짝 피어나듯 봄이 돌아온 두북도 바쁘고 숨 가쁘게 돌아갈 테지요. 농사꾼 3년 차, 하지만 짬짬이 여유를 내고 농사의 재미를 찾아갑니다.
이제 밭으로 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납니다. 실수해도 덜 울렁거립니다. ‘그럴 수 있지!’하고 웃어넘기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초록빛이 완연한 계절입니다. 두북에도 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며 지난 2월, 두북 수련원은 3년 동안 벼렸던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습니다.

하우스 시설 안의 땅은 사람이 주는 만큼만의 물만 머금을 수 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서 농사짓고 있는 하우스 네 동 가운데 두 동은 10년도 더 된 것으로, 마을 어르신께서 짓던 하우스를 이어받아서 짓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하우스를 빌려주신 마을 어르신께서는 고추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스프링클러가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추는 탄저병에 취약한데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땅에 떨어지며 고춧잎 뒷면에 튀면서 이물질이 묻힙니다. 이것이 탄저병이 주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고추는 뿌리에만 집중적으로 물을 주는 ‘점적’ 방식으로 물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이 하우스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서너 명이 매달려 끙끙대며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2년 동안 해야지 하던 것을 일주일 만에 끝내니 너무 좋았다.

생전 처음 스프링클러 설치에 도전하다
두북 농사의 첫 번째 목표는 공동체의 자급자족입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고추 외에도 다양한 작물이 필요한데, 이들은 물을 주는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모든 작물은 뿌리로 물을 흡수합니다. 이 중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등은 두둑에 일렬로, 혹은 두 줄로 심기기 때문에 뿌리에 바로 물을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마을 어르신이 주셨던 ‘점적’ 방식처럼 말이지요. 반면 상추, 시금치, 열무 등의 잎채소류는 두둑에 열어 줄, 혹은 무더기로 심기 때문에 하나하나 작물의 뿌리에만 집중해서 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물 조리개나 스프링클러처럼 물을 분사해서 주면 수월합니다.

하우스 네 동에 고추, 토마토/오이/애호박, 감자/배추 등 작물을 해마다 번갈아 가며 심어서, 연작(연속해서 같은 작물을 심는 것)의 피해를 줄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1, 2동이, 어떤 해에는 3, 4동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물소독을 위해서라도 스프링클러가 필요했습니다. 하우스는 노지와 다르게 눈비를 맞으며 소독을 못 합니다. 그래서 가을에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혹은 다음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 하우스 내부에 쌓인 염류(식물이 사용하고 토양 내에 남은 산과 염기)를 물로 씻어내는 물소독 작업을 하기 위해서도 스프링클러가 유용합니다.

올해는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도전했습니다. 더 절실해졌던 것은, 작년 하우스 고추에 진딧물 피해가 심해서 올해 꼭 하우스 소독을 하고 싶었습니다.

크게 마음먹었지만, 스프링클러를 천장에 일일이 다는 작업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3~4명이 붙어서 연결할 파이프를 모두 풀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농수관 파이프를 하우스 파이프에 묶고, 드릴로 구멍을 냈습니다. 한쪽에서는 스프링클러를 조립했습니다. 물이 천장에서 골고루 떨어질 수 있도록, 호스의 길이를 잘 맞춰서 자르고, 추를 달고, 분사 부분의 부품을 꽂았습니다.

이 모든 작업이 꼬박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매달린 탓에 생각보다는 짧은 기간 안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스프링클러를 돌리며 물이 뿌려지는 걸 보며 너무 기뻤습니다. ‘드디어 우리가 해냈구나!’라는 자부심도 들었습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하우스 물 소독에 들어갔습니다. “쫘~악, 쫘~악” 시원스레 하우스를 씻어내며 마음까지 상쾌해졌습니다.

농부 마음, 부모님 마음
한편에서는 고추씨를 심었습니다. 고추는 작물 중 가장 먼저 파종에 들어가는 작물입니다. 볍씨를 키우는 모판에 모판흙을 붓고, 고추씨를 줄뿌림합니다. 한 판에 150여 개가 들어갑니다. 고추씨를 같이 심던 신입 농부가 신기해했습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 씨에서 고추가 열리는 거예요? 고추를 먹을 때 탈탈 털어버리던 그 고추씨잖아요!”

맞습니다. 습기와 온도가 맞아야 하지만 그 작은 씨앗이 싹을 틔워 제 몸의 몇 배가 되는 고추를 키워냅니다. 신입 농부는 작은 고추씨에 담겨 있는 인因 에 감탄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추씨가 고추를 키워내는 인을 가진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무한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고추씨를 심은 지 3-4일 차. 전혀 기별이 없습니다. 싹트기 전 모종 온상은 항상 25~30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낮에도 너무 온도가 높지 않아지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쌀쌀해지는 밤과 새벽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고추 파종을 위해서 특별히 열선을 깝니다. 그런데 다른 콘센트를 헷갈려서 고추씨가 있는 모종 온상의 전원을 꺼버렸습니다. 밤사이 온도가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온도를 확인하는데 “헉!”하고 놀랐습니다. 작물이 열매를 맺을 때 스트레스를 주면 달아집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다르게 어릴 때 상처를 입으면, 평생 생육이 좋지 않습니다. 한 해 고추 농사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했습니다. 전문가께 여쭤보니, 아직 발아하지 않았으면 괜찮을 거라고, 며칠 더 기다려 보자고 하셨습니다.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파종한 지 딱 6일째 되는 날, 1300여 개의 씨앗 중에서 열 개 정도가 싹을 틔우며 먼저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제야 안도했습니다. 너무 기특했습니다. 이렇게 모종을 볼 때면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무리 없이 크고 있구나. 고마운 마음.


오밀조밀 싹을 틔운 고추 모종들. 볼 때마다 반갑다.

쑥쑥 자란 행복한 농부
이제 고추 파종을 필두로 본격 농사 시작입니다. 하우스에 감자는 이미 2월 말에 심었고요. 하우스에 양배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등도 키웁니다.

꽃봉오리들이 툭툭 얼굴을 내밀고 활짝 피어나듯 이제 두북도 바쁘고 숨 가쁘게 돌아갈 테지요. 농사꾼 3년 차, 하지만 짬짬이 여유를 내고 농사의 재미를 찾아갑니다. 이제 밭으로 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납니다. 실수해도 덜 울렁거리고요. 남의 실수를 봐도 ‘그럴 수 있지!’하고 웃어넘기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아침이면 밤새 쑥쑥 자라준 작물들을 둘러보며, ‘농부로 살고 있어 참 행복하다!’라고 되뇝니다.

 

*에코붓다 소식지 2022년 03·04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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