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슈퍼맨만 지구를 지키나? 집 안에서 지구 지키는 ‘에코맘’

“예전에는 시장에 가면 얇은 지갑이 스트레스였죠.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아서요. 지금은 쌓여 있는 물건을 보면 현기증이 나요. 새 물건을 사면 지구에 대한 죄책감까지 들어요.”

박희경(37·경기 안산시 고잔동) 씨는 어느 날 마트에 잔뜩 쌓여 있는 물건을 보며 “쓰레기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늘 새것을 원하는 나의 욕구가 환경오염에 일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무공해 삶을 박탈하는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하고요.”

○ “환경보호, 집에서도 얼마든지 해요”

박 씨가 참여하는 안산YWCA 내 소모임 ‘참살이 민들레’는 ‘사람을 살리는 참된 살림을 실천하자’는 뜻으로 뭉친 주부 12명의 모임이다. 지난해 안산YWCA의 ‘환경건강매니저 양성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배운 것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계속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모임의 ‘방장’인 하용여(46) 씨는 “한 가정의 경영자라고 할 수 있는 주부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에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주부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는 주부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환경보호 열풍을 소개했다. 가정에서 생태주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주부들을 가리켜 ‘에코맘(Eco Mom)’이라고 한다.

○ 생리대도, 세제도 만들어 써요

참살이 민들레 회원들은 먼저 ‘면생리대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회용 생리대는 사용 후 감염성 폐기물로 분류돼 땅에 묻히는데 잘 썩지도 않을뿐더러 제품 안에 들어 있는 표백제 등 화학물질이 땅에 스며들어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조혜옥(40) 씨는 “처음에는 생리대를 사는 돈을 아끼려고 면생리대를 만들어 써 봤는데 사용감이 너무 좋아서 계속 쓰고 있다”면서 “일회용품은 환경뿐 아니라 우리 몸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주부 김명희(41) 씨는 집에서 천연세제를 만든다. 세제의 강한 세척 성분이 아토피피부염을 유발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유용미생물(EM)을 이용한 세제다. 유용미생물은 효모, 유산균, 누룩균 등 식품 발효에 사용하는 미생물들로 부패를 막고 기름때를 없애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유용미생물 10cc에 쌀뜨물 1L, 설탕 10g을 넣고 20∼40도에서 일주일간 밀폐해 두면 쌀뜨물 발효액이 만들어진다. 이를 액체 세제와 섞어 사용하면 세제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 위에 쌀뜨물 발효액을 뿌려 퇴비를 만들기도 한다. 유용미생물은 친환경용품 인터넷 쇼핑몰과 환경 관련 단체에서 구입할 수 있다.

주부 정서영(43) 씨는 건강한 먹을거리 운동을 실천한다.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자녀들의 피부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면서 음식 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꿨다. 식탁에서 농약과 화학비료, 식품첨가물도 몰아냈다.

정 씨는 몸에 좋은 조리법을 개발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최근 두유와 올리브유로 마요네즈를 만들어서 조리법을 친구들에게 보내 주기도 했다.

○ 조금 번거롭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에코맘들이 지향하는 생활습관은 조금 더 번거롭고,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이다.

일회용 생리대는 한 번 쓰고 버리면 되지만 면생리대는 매번 빨아야 한다. 유용미생물로 퇴비를 만드느라 집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런 그들을 두고 주위에서는 ‘유난스럽다’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에코맘은 이런 번거로움을 자처한다.

조혜옥 씨는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남편이 ‘밖에서 환경운동은 열심히 하면서 왜 집은 깨끗하게 치우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주말에 남편, 아이들과 함께 천연세제를 만든다”고 말했다.

하용여 씨는 “환경운동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환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내 자신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부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에코맘의 환경보호 활동은 소모임 수준에서 지역사회 기반으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최근 참살이 민들레 회원들은 환경운동에 관심 있는 여고생들의 요청으로 대안생리대 교육을 했다. 인근 아파트 행사에 가서 천연수세미와 천연비누를 만들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고르는 시범을 보였다.

주영숙(46) 씨는 “거창하지 않지만 친환경적인 삶을 함께 실천하는 다른 주부들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활동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email protected]

장바구니 들고 일회용 컵만 안 써도 나는야, 초보 에코맘

집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 내 ‘여성위원회’(ecowoman.kfem.or.kr)는 가장 손쉬운 환경보호 활동 중 하나로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를 추천한다. 여러 번 쓸 수 있는 헝겊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면 물건을 살 때 주는 비닐봉지를 줄일 수 있다. 일회용 컵 대신 머그 컵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기본이다.

환경교육기관 ‘에코붓다’(www.ecobuddha.org)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으로 지렁이를 이용하라고 제언한다.

화분에 지렁이를 넣어두고 음식물 쓰레기를 3, 4일에 한 번씩 종이컵 한 컵 분량으로 흙 속에 파묻어 둔다. 지렁이는 과일 껍질, 채소 껍질 등을 먹고 이를 퇴비로 만든다. 생선 고기 등을 너무 많이 넣으면 음식물에서 가스가 생겨 지렁이가 가스를 피해 다니다가 용기 밖으로 기어 나오기도 하니 주의해야 한다.

‘녹색연합’(www.greenkorea.org)은 식품첨가물이 덜 들어간 친환경 요리를 제안한다. 녹색연합이 매달 셋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녹색연합 사무국에서 여는 ‘소박한 밥상’ 모임에서는 친환경 조리법이 소개된다.

이 모임은 지난해 5월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 두부를 만들었다. 두부를 응고시키는 데 쓰는 식품첨가물 염화마그네슘 대신 식초, 구운 소금, 생수를 넣어 응고제를 만든다. 불린 콩을 갈아 베주머니에 짜서 즙을 낸 다음 15분간 끓이다가 응고제를 섞고 5분간 식힌다. 몽글몽글해지면 물 빠지는 천에 올려놓은 후 10분 정도 기다리면 두부가 만들어진다.

의정부YWCA는 아기를 위한 천연 이유식을 만든다. 불린 쌀을 부숴 물과 1 대 10 비율로 섞은 후 20분 동안 서서히 끓인다. 아기가 이유식에 적응해 가면 단호박, 치즈, 토마토 등을 넣어준다.

김현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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