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불광]수행의 현장, 빈그릇운동

방송날짜: 2004.11.12 17:17:27

[월간불광] 수행의 현장
정토회 빈그릇 운동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자연 을 살리는 길‘정녕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이 시대의 낭비문명, 관성의 법칙에 이미 가속도까지 붙었으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 이즈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이 모이고 모여 강물을 이루듯, 그 작은 실천들이 마침내 이 사회를 지속가능한 생태적 사회로 바꿀 수 있기에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일찍이 불교의 발우공양의 정신을 이어 음식물쓰레기 제로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토회의 활동에 주목했는데, 만일 결사의 일환으로 9월부터 12월까지 100일간 전개하는‘빈그릇 운동’ 소식에 수희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곽결호 환경부 장관과 소설가 김홍신 씨, 방송인 전원주 씨, 배종옥 씨, 김미숙 씨,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박원순 씨 등도 직접 서약에 동참하여 ‘빈그릇 운동’ 홍보에 적극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하니, 불자들의 작은 실천에서 나아가 전 국민적인 캠페인으로써 이 땅의 생활문화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적게 먹고 적게 쓰면 행복해진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하느냐에 따라 일상사 모든 것이 수행 아닌 게 없다고 했던가. 지난 9월 13일 서울역 광장 신청사 앞에서 열린 ‘빈그릇 운동-음식 남기지 않기 10만인 서약 캠페인’의 서울지역 선포식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수행의 현장이었다.
이날 거리기자회견에서 유수 스님(정토회 대표, (사)한국불교환경교육원 원장)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적당한 양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가장 좋아지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건강한 육체와 더불어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큰데, 빈그릇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가경제에 큰 이익이 되고, 쓰레기로 버려질 비용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이 운동이야말로 환경을 보전하고 굶는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라고 빈그릇운동의 취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였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한해 동안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15조원에 이르고 그 처리비용만도 4천억원이 든다고 한다. 이는 연간 자동차수출액과 맞먹고 농·축·수산물 수입액을 훨씬 상회하는 액수이며,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이 30년 간 먹고 살 수 있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경제적인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음식물 쓰레기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매립하면 다량의 침출수가 흘러나와 수질과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소각할 경우에는 비용증가는 물론이고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다량으로 배출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성냥불 하나가 태산을 태우듯이 개개인이 하는 작은 실천 하나가 지구를 살린다”는 유수 스님의 말씀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왔다.

탐진치를 다스리는 수행 중의 수행
유수 스님의 말씀에 이어서 이정자 씨(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장)는 “지난 7월 일본에 다녀왔는데, ‘일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질문했다가 ‘남길 게 없기 때문에 따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것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 매우 부끄러웠다. 그 말을 듣고 우리의 음식문화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적게 주문해서 빈 그릇을 만들다보면 식당에서도 동참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한편 안승일 씨(서울시 환경과 환경과장)는 “서울시에서 하루에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가 2600톤인데, 그 중 1300톤은 퇴비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김포매립장에 묻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음식물쓰레기 매립이 전면 금지된다. 서울시에서는 10여 년 동안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를 해왔는데, 3500톤 정도 나온 97년에 비하면 900톤 정도 준 셈이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양이 많다.
그런데 정토회에서 빈그릇운동, 음식물쓰레기 제로운동을 펼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반갑고 고마운 일이 없다”고 하면서 ‘서울시는 음식물 쓰레기가 없는 도시’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동참을 호소하였다.
실제로 음식점에서 1인당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가정보다 8배(식당은 약 2.3kg, 가정은 0.3kg)가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음식점에서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주문하기 전에 메뉴판 꼼꼼이 살펴 남기지 않을 만큼 주문하기, 주문할 때 식사량을 미리 말해주기, 먹지 않을 음식이나 후식은 미리 반납하기, 여럿이 먹는 요리는 개인접시 사용하기’ 등의 습관화가 절실하다.
문득 빈그릇 운동 실천 사례 중, “빈그릇 운동 첫째날과 둘째날은 외식하고 와서 열심히 화장실을 가야 했고, 된장까지 다 먹느라 진땀을 뺐는데, 셋째날 먹지 않을 음식은 미리 반납하고 가뿐하게 빈그릇을 만들어 뿌듯했다는, 빈그릇운동은 기분 좋은 운동이요, 탐심을 다시 돌아보는 운동”이라는 내용이 생각난다.
그 동참자의 말처럼 빈그릇운동이야말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중의 수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부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다
무엇이든 스스로 적극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권할 때 더욱 설득력이 있기 마련인지라 마지막으로 발표한 주부활동가인 신원선 씨(62세)가 “이 순간 나부터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오늘 냉장고부터 시원하게 정리하고, 시장 바구니를 가볍게, 좀더 적은 소박한 밥상을 차리겠다. 적게 먹고 아낀 돈으로 어려운 이웃과 나눌 것이다.”라고 빈그릇 운동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데, 매우 돋보였다.
살림을 하는 주부는 말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존재이다. 주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림을 하느냐에 따라 가정도 살리고 사회도 살리고 나아가 국가경제도 살릴 수 있다. 실제로 전체음식물 쓰레기의 53%를 가정에서 배출하는 상황에서 빈그릇 운동의 성공 여부가 주부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밥알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는데…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보면 가슴이 쓰리고 또 굶는 사람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파진다. 부처님 법대로 욕망을 다스리고 절제함으로써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더욱이 환경도 살리면서 아낀 돈으로 이웃을 도와주며 좀더 행복하고 보람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음식물쓰레기 제로화는 주부들 손에서 해결될 수 있다.”며 신원선 씨는 불자가 더욱 앞장서서 빈그릇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불자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라는 사실, 부처님께서 일깨워주신 연기법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불자가 어찌 나의 몸을 살리는 음식물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있으며, 또한 나와 한 몸인 저 배고픈 이웃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도 빈그릇 운동(서약과 함께 환경기금을 천원씩 기부케 하여 환경을 살리고, 굶주리는 세계 어린이 구호기금으로 사용한다)은 우리 사는 세상을 맑고 밝은 정토로 일구는 이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수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불자들만의 수행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는 수행으로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나·이웃·자연을 살리는 수행에 동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인터넷(www.jungto.org)으로도 서약이 가능하다.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빈 그릇 운동에 동참한 이들에게 미리 찬탄의 박수를 보낸다.

[사기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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