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아줌마들의 빈그릇 치맛바람

방송날짜: 2007.6.25














▲ 토요일, 근무가 없는 날임에도 직접 승합차를 몰고 대원칸타빌로 박 회장과 부녀회원을 태우러온 양천구 음식물쓰레기 팀장 최병호님과 담당주임 박희선님께서 주민들이 모아놓은 생쓰레기 자루를 차에 싣고 있다. 양천구는 지자체로는 가장 먼저 빈그릇 운동에 동참하고 나서 관공서에서 환경운동을 펼쳐나가는 모범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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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함께 간 부녀회원 좌측부터 부녀회장 박양심, 통장 송옥심, 부녀회원 박희숙, 안미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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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 어머니들 사이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빈 그릇 운동’과 ‘쓰레기 말리기’ 운동.

음식물을 남기지 말고,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쓰레기는 말려서 배출하자는 것이다. ‘생쓰레기’란 조리하는 과정 중에 나오는 야채 다듬은 껍질, 과일껍질, 보리차 찌꺼기 등 염분이 들어있지 않은 식물성 음식물 찌꺼기를 의미하는데, 마른 생쓰레기는 퇴비로 재활용된다.

특히 이 운동을 부녀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대원 칸타빌 아파트의 사례는 주목할 만 하다.

이 아파트의 박양심(60)씨는 타고난 부녀회장이다. 친정아버지, 아픈 동서 등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으면서도 동네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특히나 젊은 주부들에게는 맏언니 역할을 해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단다.

삭막한 아파트에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 박양심씨를 4월 말 직접 찾아갔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손사래쳤지만, 막상 만나보니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수줍음 많고 푸근한 웃음을 가진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빈 그릇 운동’을 아시나요?














▲ 박양심(60) 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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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에서 생쓰레기를 처음 말려서 내놓은 지난 2월 9일. 현재는 약 70세대 정도가 참여해 주 1회씩 마른 생쓰레기를 모으고 있다. 총 510여 세대 중 15% 정도가 참여하고 있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렇게 모인 마른 생쓰레기는 강화도에서 무농약 농사를 짓는 한재호씨가 직접 가져가고 있다. 올 가을에는 생 쓰레기를 퇴비로 뿌려 만든 농산물을 대원 칸타빌로 직거래할 예정이다. 도농간의 순환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주민들은 시도 자체가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란다. 예전에는 주민들 대다수가 쓰레기를 그냥 버리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없었는데, 지금은 쓰레기양도 줄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좋단다.

특히 박양심 회장은 주민들을 만나면 “얼마나 말려서 버렸어요?” 하고 물어보는 게 인사가 되었다. 손자들도 집에 오면 “할머니, 쓰레기 어디다 버릴까요?” 하고 물어보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한다.

“부산에 사는 며느리한테도 해보라고 권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과일을 많이 먹으니까 나올 게 많잖아요.”

빈 그릇 운동을 하면서 생활 전반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 물주전자·냄비·밥솥 등 그릇들이 작은 것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전기세도 절약되고, 가스비도 줄었다.

가족의 호응도 든든하다. 남편도 든든한 후원자다.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말리느라 펼쳐놓은 생쓰레기를 치우려고 했더니 남편이 “냄새나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보고 따라하면 좋지 않냐”고 할 정도.

도시에서 말린 음식, 농촌에선 비료로















▲ 이날 방문은 에코붓다 김윤희 간사, 서울정토회 환경사업부 윤태임 부장과 자원활동가 이성미님께서 부녀회원들과 함께 학교 곳곳을 둘러보고 밥도 먹으며 소풍 나온 것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한재호씨가 도착하기 전, 마리중학교 교장선생님과 강화 군수님과 함께 모여 환경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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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씨는 이러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기름값도 안 되지만 일부러 서울까지 달려와 생쓰레기를 수거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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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반상회를 통해서 시작됐다. 이 곳에서 환경운동단체 에코붓다 측이 ‘빈 그릇 운동’을 소개하고 교육했던 것.

이번에 박양심씨와 부녀회원들은 한재호씨를 만나기 위해 직접 강화도를 찾았다. 마침 한재호씨 밭 인근에 대안중학교인 마리학교에서 개교기념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한씨는 이 학교에서 농사와 목공·울력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한재호씨는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농민 입장에서 정확히 생쓰레기만 말려주면 그만한 퇴비 거리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배출된 생 쓰레기는 겨우 한씨의 텃밭에 거름이 되는 수준이다. 서울을 오가는 기름값도 안 나온다. 하지만 강화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많기 때문에 배출양이 많아질수록 생쓰레기가 잘 쓰일 수 있다고 한씨는 강조했다.

“농사짓는 입장에서 저는 생쓰레기를 쓰레기라고 보지 않아요. 이것은 음식 자원이에요. 적당히 먹고 남은 찌꺼기를 다시 음식을 생산할 수 있는데 활용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북한에는 굶고 있는 애들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있어요.”

그는 생쓰레기를 완전히 말려달라고 당부했다. 쓰레기를 덜 말리면 옮기는 과정에서 무게도 늘어나고 쉽게 부패해 악취가 나서, 동네 주민들이 반기지 않는단다.

이 때문에 일부러 아파트의 생쓰레기를 가져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몇 번 덜 마른 포대가 있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고쳐지지 않아서란다. 한씨는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한재호씨는 음식물 퇴비화를 이야기하며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했던 부녀회원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만남을 통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확신을 얻은 듯 했다.

도-농, 주민-NGO-관공서가 뭉치니 “일 되네”

이번 운동에서는 대부분 가정주부인 부녀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단지 내 방송을 하거나 통합 반상회를 개최하는 등 주민 홍보를 담당하고, NGO단체인 에코붓다는 주민교육과 수거해갈 농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구청은 현수막과 생 쓰레기 수거용 마대 포대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주민과 관공서, 도시와 농촌, NGO단체와 일반 시민간의 유기적인 결합을 일구어내는 시도가 주목할 만하다.

에코붓다 이성미씨는 “아파트 부녀회원들과 통반장들이 교육을 받고 의식이 바뀌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놀라운 성과”라고 말한다.

양천구 최병호 팀장은 “관내에서 빈 그릇 운동과 생쓰레기 퇴비화 운동이 함께 시도되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라며 “이 곳의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구청의 음식물 수거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다”고 전망했다.

현재는 조리 후 찌꺼기까지 모두 한꺼번에 수거해 가는 체계인데 앞으로는 음식물쓰레기도 조리 전과 후로 이원화해서 수거하는 체제로 바뀔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례들이 수집되어야 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정책으로 발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생 쓰레기가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민들에게 연결되고 농민들은 이렇게 생산한 농산물을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직거래 한다면, 훌륭한 도농 공동체 첫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 만남 후 대원칸타빌 부녀회는 지난 4월 말일 반상회를 통해 부녀회비를 갹출하여 비닐을 쓰지 않도록 유도하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대량구매 해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생쓰레기의 필요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 권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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