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여명이 밥을 먹어도 쓰레기가 안 생기는 이유

2008.06.11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에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음식쓰레기를 거의 만들지 않는 곳과 일반 가정을 비교하면서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음식쓰레기가 만들어지는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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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회에선 매주 수요일 200여명이 넘는 회원이 모여 한꺼번에 식사를 한다. 그렇지만 2004년 빈그릇운동 이후 이 곳에선 쓰레기가 만들어져 건물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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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명 식사준비를 하는데 음식쓰레기는 단 한 줌. 게다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쓰레기는 ‘제로’. 당연히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살 일이 없다.

‘빈그릇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토회 사무실을 찾은 이유다. 지난 4일 수요일, 200여명 정도 되는 회원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날이다. 서울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설마 음식쓰레기가 전혀 안 나올라구?’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날 안내를 맡은 이는 정토회 최윤희 서울부장. 혹시 꼬투리 잡을 게 없을까 싶어 CSI(과학수사대) 마냥 둘레를 두리번거렸다. 이런 나의 음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최윤희 부장은 “건물 내부를 모두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주방에선 7명이 분주… 어, 정말 쓰레기가 안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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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회 주방. 다듬는 과정에서 깎아내거나 버리는 게 없다. 채로 채소 한 줄기까지 걸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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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장을 따라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식당.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점심 준비를 하느라 주방이 분주하다. 문 입구 머리 선반에는 자기 그릇이 줄지어 놓여 있다. 바로 승려의 밥그릇인 ‘발우’. 너무도 정갈한 모습에서 엄숙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그래, 밥이 하늘이라고 했던가.

주방에선 일곱 명이 버섯, 감자, 시금치, 열무 등 오늘 점심에 쓸 재료를 다듬고 있다. 어, 그런데 다듬고 난 뒤에 당연히 나올 음식쓰레기가 없다. 감자는 친환경수세미를 갖고 흙만 털어낸 상태로 껍질 채 썰고, 시금치도 뿌리 채 씻어서 바구니에 담는다.

큰 대야에 담고 씻는 과정에서도 채를 사용해서 작은 이파리까지도 모두 건져낸다. 물은 계속 재사용이다. 버섯 씻은 물은 감자에, 감자 씻은 물은 시금치에 쓴다. 요리하는 과정을 눈에 불을 켜고 쳐다봤지만,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상한 부분 등 걸러낸 것을 모두 더해봤자 채 한 줌이 안된다. 일단 재료 다듬는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0’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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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여명 분 식사를 준비한 뒤 나온 쓰레기. 이 쓰레기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지렁이 밥이 되고, 분변토는 다시 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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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쪽으로 갔다. 주먹만한 통에 쓰레기가 담겨 있다. 역시 있긴 있었다. 최 부장에게 물었더니, 저녁에 한 회원이 오렌지를 사와서 생긴 껍질 쓰레기란다. 원래 껍질 쓰레기가 생기는 음식물은 이 곳에 가져오지 못하게 돼 있는데, 신입회원이 저지른 실수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즉각 대책위가 뜬다. 누가 언제 해당 물건을 사왔고, 어떤 자리에서 먹었는지 살펴본 다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만든다.

“달걀 껍질은 어떻게 하나? 껍질까지 먹을 수는 없을 텐데. 조개류도 껍질쓰레기가 생기지 않나?”라고 물었다. 최 부장이 싱긋이 웃더니 “육식류(해산물 포함)는 여기서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삶은 소박하게 먹기가 시작”이라면서 “먹을 것 다 먹고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그래도 먹고 싶지 않나. 말이 쉽지 실천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텐데.
“모든 게 습관이다. 습관을 바꾸면 배불리 먹는 삶, 고기 많이 먹는 삶을 멀리 해도 아무렇지 않다. 여기서 10년째 사는 분들이 있다. 10년 동안 고기 한 점 안 먹었는데, 아주 건강하고 힘 쓰는 데도 문제없다. 가끔씩 밖에 나갈 때 내가 먹는 게 특별하구나 느끼지, 이 곳에 있으면 전혀 느끼지 못한다.”

– 습관 바꾸는 게 쉬웠다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했을 거다.
“혼자서는 힘들다. 여럿이 하면 된다. 함께 하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혼자서 하다 보면 귀찮아지고, 그러다보면 비닐로 된 1회용 음식 사먹게 된다. 이런 모임이 필요한 이유다.”

정토회가 쓰레기 ‘0’ 운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 빈그릇 운동을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 운동은 지금까지 떠들썩하진 않지만 성공리에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초·중·고등학교와 기업, 지자체 등에서 정토회 자문을 받아 빈그릇 운동을 진행 중이다. 한 학교는 음식쓰레기로 밭을 가꾸고, 생태숲까지 꾸밀 정도로 열심이다.

완벽한 관리는 불가능, 스스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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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먹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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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상근을 하는 구언련(55)씨와 대화를 나눴다. 음식재료는 13일에 한 번 정도 가락시장에 가서 사온다. 꽤 많은 양이지만 모자라거나 부족한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음식을 남기지도 과식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음식량을 조절하면 계획 구매가 가능하다.

비닐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채소류는 자루나 종이상자에 담아 온다. 자루와 종이상자는 계속 재사용한다. 간혹 딸려오는 비닐은 다음에 물건 사러갈 때 모아서 돌려준다.

가끔씩 신입회원과 방문객들이 오는 만큼 완벽한 관리는 불가능한 법. 한 끼 식사에서 음식이 남으면 다음 식사에서 반드시 처리한다. 감자 껍질 채 요리를 해도 누군가는 껍집을 벗기고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런 간 큰(?) 회원이 있다면 놔둔단다. 최 부장은 “자연스레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일도 껍질 채 먹지만, 어르신들 중에 깎아달라면 깎아드린다고.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선 쓰레기를 만드는 일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여름철을 맞아 등장한 음식쓰레기계의 블록버스터 ‘수박’도 금지품목인지 물었다. 아니란다. 속껍질, 겉껍질은 나물로 무쳐먹는다고. 보여달랬더니 냉장고에서 수박껍질나물을 꺼낸다. 젓가락을 집어 맛을 봤다.( 음, 맛있진 않다. 자꾸 먹다 보면 익숙해지려나.)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실내를 구경했다. 곳곳에 환경실천 문구가 적혀 있다. ‘1회용 컵을 쓰지 않아요-자기컵 쓰기’, ‘우리 화장실에는 휴지를 쓰지 않습니다’, ‘한 번 사용한 물은 모아서 2번 이상 씁니다’, ‘비닐포장된 과자, 빵, 사탕은 가져오지 않습니다’와 같은 말이 계단마다, 문마다 적혀 있으니 은근히 신경 쓰인다.

문구를 적은 종이딱지는 종이상자를 오렸고, 분리수거 상자 또한 종이상자를 오려서 만들었다. 손잡이는 다 쓴 볼펜을 잘라서 만들었다. 곳곳에 재활용품이다. 최 부장은 “버리는 물건이 워낙 많아서”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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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희 부장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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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후. 아래쪽이 내가 먹은 밥그릇, 국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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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과 건물을 구경하는 가운데 마침내 요리 완성. 최 부장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런, 너무 맛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최 부장이 김치 한 조각을 국에 씻어서 그릇 한쪽에 놓는다. 그릇을 닦는 데 쓴단다. 그런데 접시 닦기에 좋은 넓은 김치조각이 내겐 없다. 최 부장이 ‘싱긋’ 웃으며 김치조각을 하나 씻어서 준다.

반찬과 밥, 국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이 정도면 됐겠거니 했더니 최 부장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략난감. 어쩌라고. 옆을 봤더니 식사를 끝낸 사람들의 밥그릇이 반질반질 새 그릇 같다.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서 그릇에 밥풀 하나, 고춧가루 하나 붙어있지 않다. 최 부장에게 다시 씻은 김치 조각을 하나 빌려서 그릇을 깨끗이 닦아 마셨다. 여기에 물을 부어서 다시 한 번 반복. 드디어 내 밥그릇에서도 빛이 난다.

이제 설거지할 차례다. 주방 개수대는 두 개. 한 쪽엔 쌀뜨물이, 한 쪽엔 맑은 물이 담겨 있다. 그 옆 대야에 또 맑은 물이다. 이미 깨끗한 그릇들이니 설거지할 게 별로 없다. 이 적은 물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 그릇 설거지가 가능하다는 게 이해가 된다. 마른 수건으로 닦고 제자리에 놓으니 식사 전 상태다.

“자연이 감당할 만큼 내놓으면 쓰레기가 될 일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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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쓰레기는 옥상 지렁이 상자로 보내진다. 지렁이가 만든 분변토로 기른 채소. 이 채소는 다시 좋은 반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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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무리 단계인 옥상 구경. 옥상 상자엔 지렁이들이 살고 있다. 상자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를 지렁이로, 나머지는 흙으로 채운다. 지렁이와 흙을 더한 양은 상자의 절반 정도다. 어쩔 수 없이 나온 음식쓰레기들이 지렁이들 먹이가 된다. 역한 음식 냄새가 날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다.

“지렁이가 감당할 만한 양이니까 냄새가 안나는 거예요. 원래 쓰레기라는 게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으면서 생기는 거거든요. 냄새도 그래서 나는 거구요.”

편견이 깨졌다. 옥상엔 화분이 가득하고, 화분에선 상추, 콩, 호박, 오이가 자란다. 화분은 모두 사람들이 버린 물건들을 주워서 쓰는 재활용품이다. 상추에 주는 거름은 지렁이가 음식물을 먹고 만든 결과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채소는 다시 식탁에 올라간다. 음식물의 윤회다.

옥상까지 구경한 다음 1층으로 내려가니 대강당에서 북한식량난 관련 비디오를 상영 중이다. 분위기가 무척 숙연하다. “우리 가족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옥수수 1kg만 있었다면 절대 고향을 버리고 탈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자 참석자들은 안타까운 표정들이다. 우리가 1년만 아끼면 북한 주민을 30년 동안 먹일 수 있단다.

비디오 상영이 끝난 뒤 마침내 점심 시간.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강당에 모여 한꺼번에 식사를 시작한다. 이런 생활이 익숙한 듯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끗하게 밥을 닦아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밖으로 나왔다. 정토회관 환경수칙이 걸려 있다.

▲공양접시는 물로 깨끗이 닦아 먹습니다 ▲과일은 깨끗이 씻어 껍질째 먹습니다 ▲화장실에서는 휴지 대신 뒷물을 합니다 ▲비닐포장된 과자, 빵, 사탕을 먹지 않습니다 ▲쇼핑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투명 방수망을 사용합니다 ▲캔 음료는 먹지 않습니다 ▲종이컵 대신 자기컵을 가지고 다닙니다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쓰레기 ‘0’ 운동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는 욕망의 절제다. 필요한 만큼 사고 필요한 만큼만 먹거나 쓰는 자세다. 넘치는 욕망을 채워야 행복해진다고 믿는 시대에 정토회는 욕망을 줄임으로써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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