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면 도시도 힘들다 | 최광수

도시는 빌딩과 도로, 가로수들의 단순 집합체가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고도화된 유기체인 인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인간이 정주하기 이전의 자연생태계와는 조금 다른 사회생태계, 문화생태계로서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건강과 심리상태를 알 수 있듯이, 집을 한 바퀴 둘러보면 그 집 식구들의 안녕과 행복을 알 수 있듯이,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보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유기성이 얼마나 잘 유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을 둘러보면 어떤가? 도시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지역과 달리 대부분의 “도시”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더럽고 어수선하다. 그리고 너무 바쁘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철, 고무, 플라스틱, 유리 복합체들(자동차)도 ‘힘들어 죽겠다’ 소리를 내뱉는 듯 하고, 제 품속에 사람을 가득 담고 있는 콘크리트, 유리 복합체들(건물)도 요즘은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길 따라 늘어선 초록빛 유기체들(가로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기관지 천식 때문에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중환자실에 실려가야 할 수준이다. 뭐니뭐니해도 도시에서 제일 힘든 건 사람들일 것이다. 죽겠다 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죽음의 릴레이라고 부를만한 끔찍한 집단 착란상태이다. 꿈을 꿔야할 아이들도 편안하게 지내야 할 노인들도 끔찍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 곳이 지금의 도시이다.

그래서 도시가 자가 치유에 나섰다. 물론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도시는 도시답게 살자는 것이다. 슬로시티 운동이라 부르는 새로운 셀프 힐링의 손길이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상처를 치유하고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빅 사이즈”가 지배하는 분위기이지만, “크고 힘센 것”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진짜 좋은(well) 것”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중이다. 당분간 거대 도시들은 계속 확장의 길을 가겠지만, 곳곳에서 슬로시티들이 늘어나면서 언젠가 전체 사회의 주류가 될 것이다.

슬로시티란 지역의 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하면서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물신주의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소중히 하는 창의적인 마을이다. 슬로시티가 된다는 것은 방향과 철학의 문제이다. 너무 빠르게 달려왔기에 숨이 차니 잠시 쉬었다가 다시 뛰자는 게 아니다.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는 삶은 잘못 된 것이고, 행복하지도 않고, 계속될 수도 없고, 사실 그렇게 뛰어야만 할 이유도 없으니 내 삶을 바꿔서 도시가 더 행복한 곳이 되도록 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슬로시티 운동은 도시를 벗어나 농어촌에서 한가롭게 살자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본다. 속도는 도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들어낸 것이니, 장소를 옮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삶의 방향과 철학”을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하는 문제이지,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행복으로 삼고 있는지, 행복해지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내 삶이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체와 물질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지점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 “슬로 라이프”가 시작된다.

그런데 도시나 마을은 독자성과 독립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지구 전체와도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웰빙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소위 우리끼리 “잘 살자”에 빠져서는 안 된다. 북유럽의 마을들이 자족적이고 느린 삶을 산다고 해도, 나름대로 풍족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은 제3세계와 자연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지구 저편의 경제 위기와 지구온난화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 한 번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필요한 지점이다. 슬로시티 만들기는 우리 마을이 함께 “행동”하는 것이지만, 그 지향은 언제나 전 지구에 맞닿아 있다는 걸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최근 웰빙과 로하스가 상업적으로 호도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의 문제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나와 우리 마을이 하나로 묶여 있고, 옆 마을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도시, 다른 나라, 지구 전체와도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큰 나무의 가지 하나가 구성 세포조직들의 노력과 단결로 최고의 상태(웰빙)를 유지하더라도 이웃 가지나 뿌리가 상하거나 주변의 공기나 물, 토양이 오염되면 그 웰빙은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삶의 행복이 가득한 슬로시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조성이 필요한데, 최근 우리사회에서 불고 있는 융복합 만으로 창조성이 길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창조성은 융복합이 아닌 집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화두를 탐구하듯이 깊이 연구하고 집중하면 문제의 핵심을 보게 되고, 그 지점에서 번득이는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융복합은 집중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간파한 다음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도움이 되는 수단인 것이다.

음식물찌꺼기를 분쇄해서 하수구로 흘려보내어 더럽고, 냄새나고, 벌레가 꼬이는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주는 IT, BT, ET, CT가 융합된 첨단 장치가 창의성의 징표가 아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집안이나 마을에서 퇴비화 함으로써 유기성 자원의 순환성을 높이고,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끌어올리면서 가족과 이웃들이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생명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진정한 창의성이고 “모두가” 행복한 슬로시티가 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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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 | (사)에코붓다 대표, 경상대학교 교수

내가 “편리한” 삶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살 때 도시도 행복하고, 도시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저자 주. 이 글은 6월 27일 울산과학기술대학교에서 열린 2013 울주RCE 심포지엄,『지속가능한 평생학습도시, 창조와 문화를 입다』에서 발표한 것이다.

에코붓다 소식지 2013년 7월,8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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