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포기는 기쁨이다 | 최광수

지속 가능한 삶
자발적 포기는 기쁨이다

최광수 | (사)에코붓다 대표, 경상대학교 교수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 분노가 들끓고, 자포자기가 생겨나고, 책임을 따지는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다. 한국호가 표류하고 있다는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두운 바다 밑에서 꺼져간 생명들과 허망하게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아픔을 온 국민이 보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 할 때이다.

많은 이들이 ‘미안하다.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가슴에 사무치는 이 단어를 앞에 두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뼈를 깎는 각오로 사회제도를 재정비하고, 국가 기강을 단련하고, 안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밑뿌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과 이기심, 황금만능주의를 이번 기회에 깊이 성찰하고 뒤틀려버린 우리 삶의 방향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난 50 여 년 동안 우리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RPM 눈금을 붉은 색에 두고서 무한질주 해왔다. 해마다 GDP가 크게 늘어나는 게 정상이고, 몇 년에 한 번씩 집을 늘려 이사가고, 하다못해 집집마다 살림이라도 늘어나는 게 정상인 삶을 살아 왔다. 옷장 속의 옷은 유행 따라 늘어만 가고, 신발장도 신든 안 신든 켤레 수가 늘어나고, 가전제품은 집안 곳곳을 차지해왔다. 우리는 모범적인 경제개발 국가로 세계로부터 인정받아왔고,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한국을 따라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고, 우리는 한류를 통해 이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장, 발전, 확대, 풍요의 결과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 이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충돌과 탈선을 피하고 지속가능한 주행을 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호의 승객 모두가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우리 문명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악마적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주의 사회이며, 그것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이다”. 1970년대 ‘레바논 사회주의 진보당’을 이끌었던 카말 줌블라트의 말이다. 어떤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인가? 다 같이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라 다 같이 가난한 사회라는 말이다. 헐벗고 배고픈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는 완전히 해결하되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잉여의 물질로부터는 가난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리라.

서울 정토회관에서 만난 에코보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미래에 대해 늘 불안함을 느껴서 어떻게든 많이 모아서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안달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니 삶이 단순해지고, 소비도 줄어들면서 더 많이 벌기 위해 애쓰던 시간들을 봉사하는데 사용하면서 살게 되었어요. 전체적으로 삶의 만족도도 올라갔구요.” 에코붓다에서 진행해왔던 빈그릇 운동의 문구처럼, “비우면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비우는 것이 박탈감이나 소외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함, 여유로움,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다. 수많은 성현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비우면 삶이 여유로워지면서 매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겁먹고 두려운 상태에서 허둥대다 보면 정작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물질이 넘쳐나고, 모두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비우는 것이 가능할까? 에코보살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예전에도 환경운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실천을 했었지만 오염시키니까 안 버려야 하고, 무조건 안 써야 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고 나서는 물건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의 도움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과 소중한 마음으로 물건을 대하게 되었다. 차츰 스스로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기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척 편안해졌다.” 고마움과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 하루, 내가 비우고 포기할 건 무엇일까?

참다운 문명이란 자발적 포기의 기술이다 ㅡ마하트마 간디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5-6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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